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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힘들 때 딱 한 단어만

에덴촌 2024. 7. 3. 19:24

너무 힘들 때

'딱 한 단어만' 바꿔보세요.

마음이 훨씬 편안해 집니다.

https://youtu.be/lJqypKOO9q0?si=FcinfY0YSYRPonYF

 

김주환 연세대 교수는

스스로 기독교인임을 밝혔지만,

기독교적 사고방식에 갇혀있지 않습니다.

영원한 진리, 참된 진리를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깨달은 사람이 성경과 도그마안에 갇히지

않는 까닭은, 성경과  교리에 갇히지 않는

영(=신)과  종교를 초월하는 신(=영)의 본질,

즉,  진리의 기초와 근본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왜 이토록  간절하게 수행할까요?

왜 이다지도 치열하게 수행하고 참선할까요?

https://youtu.be/yNC2n0jjg-o?si=GO25eA6NtxPjMhsb

도를 얻기 위해서입니다.

견성하기 위해서, 깨닫기 위해서입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견성한다는 것은

기독교에서 말하는 거듭나는 것과 같습니다.

 

진리의 가장 중요한 기본과 근본은 

내 안에 신(하나님)이 있음을 깨닫는 것입니다.

지식이나 관념으로 막연히 아는 것이 아닌

실체로, 실제로 체험하여 직접 안다는 것입니다.

 

김주환 교수는

내면의 신(I AM)을 '배경자아'로 명명했습니다만

배경자아가 곧 주시자이고 공적영지입니다.

메타인지이며 참나이고 불성(성령)입니다.

시작도 끝도 없는 영원불멸의 에너지체이자

신이고 신성이고 본래연목이며 하나님입니다.

가르치는 손가락은 다 다르나 달은 하나이듯,

단어나 표현 방식은 다 다르지만 이치는 하나입니다.

 

자기 내면의 신성을 깨닫게 되면

자신을 (조금씩) 객관적으로 보기 시작합니다.

메타인지가 활성하되기 때문에 거짓 자아=

육적 자아=에고의 요구와 욕구가 제3의 눈,

3인칭 시점으로 보여지기 시작합니다. 

에고에 매몰되어 살던 삶에 변화가 일어납니다.

 

또 양심을 소리를 더 명료하게 느끼게 되고,

선을 행할수록 성령의 음성이 더 또렷하게 자각됩니다.

내면의 신을 깨닫고 신성을 자각한 사람들은 

신처럼 생각하고 사랑하며 신처럼 살기를 소원합니다.

누가 강제로 시켜서 그런 것이 아니며

누가 위협하고 협박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신을 닮고 싶은 소원, 아버지를 닮고 싶은 

열망이 내면에서 샘솟듯  쏟아나기 때문입니다.

 

모든 면에서 탐진치로 가득했던, 마치 짐승과 같은

육적인 욕망들이 점차 옅어지게 되면서 맑고 밝은

신성, 고귀한 성품으로 성장하고 성숙하게 됩니다.

즉, 내면의 신성이 탐진치를 태워가는 상태가 됩니다.

 

붓다도 예수도 종교를 만들지 않았습니다.

예배당 건물이나 사원을 만들지 않았습니다.

후대어서 변질된 종교와 종교인들만  

건물을 중시하여 더 크고 더 웅장하고 더 높이 

교회당. 신전, 사당, 성황당을 만듭니다.

깨달은 사람들은 사원이나 신사나 성황당같은

교회당 건물에 아무런 의미를 두지 않습니다.

미혹의 영에 사로잡힌 무지한 교주들과 삯꾼들만

새예루살렘 성전 운운..하며 건축에 목숨을 겁니다.

 

깨달은 자들이 가야 할 길은 분명합니다.

양심의 길입니다. 지구상의 모든 종교들,

즉, 모든 사람들과 화평하며  조화롭게 사는 길

서로  평화로 협력하는 선하고 올바른 길입니다.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롬 12:18)"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마 5:48)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베전 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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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선자들은 매사에 좋게 말하고 행동한다.

그러나 매사에 자신들을 중요시한다.

(나는  선택받은 주의 종이니~선지자니~

스스로 자고하여 사람을 차별한다.

또 자신과 자신의 종교사업터를 잘 섬기는 것이

곧 하나님을 잘 섬기는 것이라는 식으로,

거짓말을 밥먹듯 한다. 그들의 말은 청산유수요,

비단결이지만 정작 그들이 하는 짓을 보면 항상 

남을 이용해 먹는 짓, 자기 이익, 돈을 위해서 

얼굴에 철판을 깐 것 같은 짓먄을 태연하게 해댄다.

남을 대접하기 보단 항상 남에게 대접이나 받고 다니며

남을 섬기기 보단 항상 섬김을 받으려고 혈안이 되어

잔치나 모임의 상좌에 앉아 뭐라도 된냥 위세를 떤다.

 

"그들의 모든 행위를

사람들에게 보이고자 하여 하나니" (마 23:5 )

 

화 있을진저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속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도다." (마23: 25절)

 

"화 있을진저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27절)

"이와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28절)

 

그들은 주님과 천국과 사랑과 천국적 삶에 대해

광명한 천사처럼 위장하여

천사처럼 말하고, 또  올바로 행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들 속 중심은 다르다.

아무것도 믿지 않고 오직 자신만을 위한다.

그들이 행하는 선은 그들 자신을 위한 것이고

그것은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고, 잘 보여서

자신에게 이익이 되게 하기 위한 것일 뿐이다.

이런 위선은 신이 가장 싫어하는 것이다. 

신은 한없는 자비로 인간을 사랑하지만

그러한 악함때문에 인간내면에서 자리잡지 못하신다.

 

위선자들은 스스로 선을 행하고 있다는

확신으로 악을 자행하는 것이다.

결국 그들이 기쁨을 느끼는 일과 통쾌함을 느끼는

일이 그들에게는 하나님 뜻이요, 선인 것이다.

그런 그들은, 지옥에 떨어지게 되면 그때는 아예

드러내놓고 거침없이 온갖 악행을 저지르게 된다.

(하나님이나, 각양 신의 이름으로, 

또는 구원해 준다는 미명으로 설교하고 선동하지만

항상 자기 이익 ㅡ헌금과 충성과 섬김ㅡ만을 추구한다.) 

그들 중심이 성취와 쾌감과 만족을 느낄 때마다

자신들이 주의 일, 옳은 일을 했다고 생각한다.

 -ㅡ천국과 지옥/  스베덴보리 ㅡ(펌글)

 

종교의 탈을 쓴 위선자들은 사기꾼들일 뿐입니다.

보이스 피싱을 경계해야 큰 낭패를 면할 수 있듯

위선자들은 경계하고 멀리하는 것이 지혜입니다.

https://youtu.be/_capwOrtnRg?si=_b3IxVjCONMNMIcR

"사람들은 웃어 넘겼지만

그는 악마였어요"

 

https://youtu.be/ZX7NZoUD_to?si=X-zx8JFuVKL9bOvR

"목사와 원장에게

세뇌당한 가족, 실화 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