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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의 생각과 육의 생각

에덴촌 2024. 6. 30. 10:36

(이사야 55:8~9) 여호아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은 것처럼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고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음이니라"

 

여호아의 생각, 다시 말하면 신의 생각,

영의 생각은 육은 생각과 다릅니다.

다르다는 것에 주목해 주십시오.

육의 생각은 사람들의 생각입니다.

즉, 에고의 생각입니다.

에고의 잔머리이며 에고의 추측과 상상이며

에고의 교리들이며 설교들이고 신념입니다.

이런 육의 생각과 에고의 신앙, 에고의 믿음은 

영의 생각이나 영의 신앙, 영의 믿음과는

다르다는 것을 인식할 수 있어야 합니다.

 

너무나 많은 기독교인들이 에고의 신념체계를 

영적인 신념체계인냥 맹신하고 있고

에고의 신앙을 영의 신앙으로 믿고 있습니다.

 

영의 생각은 부지불식간에 떠오릅니다.

영의 생각은 내면에서 불쑥 튀어오르는 것입니다.

뜬금없이 떠오르는 뜬금포가 많습니다.

에고의 교리 끼워 맞추기 이론이나 

이단사이비의 성구 끼워 맞추기와는 딴판입니다.

이것들은 모두 인간의 잔머리에서 나오는

것들로써, 신도들이 육의 생각으로 평생동안 

몰입하는 수백만장의 퍼즐맞추기 게임과 같고

한장 한 장 쌓아올리는  바벨탑 놀음과 같습니다.

 

영원한 실재, 참된 영의 바람이 불면

평생에 걸쳐 조립해 온 퍼즐맞추기 게임

신앙생활의 허상이 쓰레기처럼 날아가버립니다.

"조각 조각 부서진 작은 꿈들이

하늘 멀리 저 멀리 흩어져 가고~~"

 

육의 의식과, 육의 생각은 영의 생각을

미처 따라가지 못할 때가 더 많습니다.

오히려 에고에 세뇌되고 주입된 주입을

영(신)의 뜻으로 맹신할 때가 더 많습니다.

요컨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영의 생각을 전혀 포착하지 못 한다는 것입니다.

그나마 영감이 뛰어난 사람들만 징조와 표식으로

진리와 진실을 바르게 분별하고 미래를 예측합니다.

 

영(신)의 생각은 계산적이지도 않아보이고

치밀해 보이지도 않아 보입니다. 

영의 뜻은 꿈을 통해 주로 드러납니다.

육의 생각, 에고의 아집과 고집은

영의 생각과 신의 뜻을 아예

차단해 버리는 강한 방탄막과 같습니다.

이 강력한 방탄막이 무장해제 되는 때가

바로 잠자는 시간입니다.

에고의 강한 신념, 신앙, 아집과 고집이

편견과 선입관이 모두 다 무장해제 되었을 때가

바로 내 생각이 쉬는 시간이기에 영의 뜻은

꿈을 통해 얼빗 얼핏 보여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람이 잠잘 때,

영이 인치시듯 교훈하시는 이유입니다.

"사람이 침상에서 졸며 깊이 잠들 때에나

꿈에나 밤의 이상중에 사람의 귀를 여시고

인치시듯 교훈하시나니"(욥기33장15~)

 

예민한 영감으로 영의 뜻을 

잘 포착하는 사람이 있고 

꿈을 통해 드러나는  징조조차

포착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무대뽀로

"주시옵소서와 믿습니다"만을 반복하는 자들, 

즉 영에 둔감한 맹신도들이 대부분입니다.

 

영에 민감한 사람들은 

영적 신호를 비교적 잘 포착합니다.

그리고 영적으로 뛰어난 사람들은

사람의 선한 기, 혹은 악한 기운을 잘 포착합니다.

남들이 모두 다, 혹은 신도들이 모두 다

 "우리 목사 최고"라며 삯꾼이나 사기꾼을

추앙하고 흠모하지만...  영에 민감한 사람은

그의 중심이 악하고 더럽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그 목사는 그럴 수 없이 성결한 척, 고귀한 척,

말로써 자신을 거룩하게 꾸미고 치장하여

겉(육으로, 사람의 생각)으로만 보면 

더할 수 없이 멋지고 훌륭해 보이기 때문입니다.

사기꾼도 사기의 전모가 드러나기 전까지는,

그럴 수 없이 대단해 보인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영의 생각, 성령을 따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고정관념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이미 굳어진 편견이나 선입견을 버려야 합니다

"내가 옳다" 하는 아집과 고집을 버려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못하면 그 사람은 계속 에고로~

육적인 생각과 육의 신앙과 믿음, 육적인 아집으로

똘똘 뭉쳐져 있게되어 영의 생각을 거부하게 됩니다.

그의 신잉생활은 철저하게 영(하나님, 신)의 뜻을

거부하려고 발악하며 고집을 부리는 생활이 됩니다

 

이런 사람들은 힘쓰고 애써

열심을 다해 망하는 길로 달려가게 됩니다.

죽고 가난해지고 망해도 깨닫지 못합니다

차라리 불신자보다 훨씬 못한 처지가 됩니다.

회심하기 전의 바울같은 사람, 혹은 영을

대적하고 칼질하는 칼빈같은 사람이 되어버립니다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로마서 8:6)

 

영의 생각은, 주로 꿈으로~ 삶의 결(운으)로~

영감이나 직관으로 옵니다. 영의 생각은

교육이나 세뇌나 선동으로 오는 것이 아닙니다.

 

제대 한달 전, 사고로 죽은 박하사가

죽기 전에 자기도 모르게 했던

주변정리가 바로 영의 뜻입니다.

뜬금포로 평소 안하던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안하던 행동을 하면 죽는다"는

말이 생겨난 거겠지요.

영은 분명 징조로 미리보이고 있었지만

박하사의 육의 생각은= 에고는 =현재의식은

조금 뒤, 어떤 어마어마한 큰 일이 일어날지 

상상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 경우입니다.

"죽기 전에 하는 이상한 행동"

https://youtu.be/Ei9SfVJ22-o?si=1UZdnlDg70xEf3GZ

 

유튜버 옥천암관룡스님 이야기 속에도 

죽기 전, 한 아이가 했던 이상한 행동에 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당시로써는

엄청 큰 돈을, 현금으로 벌어 가져온

아빠의 돈, 현찰을 달라고 하여 

한 장 한 장 헤아리면서 자기 엉덩이에 깔고

앉더라는 한 아이의 이상한 행동입니다.

결국 아이가 깔고 앉았던 그 돈 300만원이 

몇일 뒤, 사고사 당한 그 아이의 장례비용으로 

고스란히 다 들어가고 말았다는 실화였습니다.

그 아이의 에고는 아무것도 몰랐지만...

아이의 부모도 그 동생도 몰랐지만...

그 아이의 영은 이미 차분하게 자신의 

장례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일종의 징조나 표식과 같은 것입니다.

 

영감이 뛰어나다, 혹은 영적이다, 하는 것은 

이런 징조들을 잘 포착해내는 것이기도 합니다.

ㅡ예수 그리스도의 향기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