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마5:3)
이 구절은, 원래 최초로 번역된 한자성경에서는
■ "허심자는 복이 있나니..." 입니다.
虛 (빌 허) 心 (마음 심) 者 (놈 자)
■마음을 비운 자는 복이 있다는 뜻입니다.
그 후 한글로 번역된 성경은
그 뜻이 원래의 뜻에서 많이 멀어졌는데,
급기야 자기들도 그 뜻이 정확히 무엇인지
모르는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로 더 아리송하게 또 다시 번역해 둔 상태입니다."
ㅡ한문 성경을 줄줄 외웠다는 탄허스님의 해석ㅡ
■ 천국은 마음을 비운 자의 것이라는 의미는
(마5장3) 마음을 깨끗하게 비울 수 있어야만
영에 접속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음을 비운다는 것은 묵상. 명상. 참선 등등
사마타=집중명상. 위빠사나=분석,통찰 명상.입니다.
어떤 사람의 전생이나. 질병의 원인 등, 혹은
죽은 망자가 어떻게 되었는지 등을 알아보기 위해,
영의 세계로 접속하는 것은 사마타=집중명상입니다.
사마타(=삼매=선정)에 들어갈 때 사람은
영적 비밀에 속한 4차원 현실을 보게 됩니다.
보통의 간단한 사안은 초인적인 집중이 필요합니다만,
신비주의의 대가, 혹은 영성의 거장들, 즉
스웨덴보리. 에드가 케이시. 다카하시신지 같이
죽은 것과 같은 상태로 들어가는 사마타도 있습니다.
위빠사나는 주로 진리=불변의 근본 이치에 대한
분석이나 통찰이며 정묘한 지혜를 증득하는 것입니다
모두 다 영의 세계에 능동적으로 접속하는 방식입니다.
그러면 인간에고나 머리나 지식으로 아는 것이 아닌,
영으로 알고 분석하게 됩니다.)
마음을 비울 수 있을 때 비로소
신과 대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음을 비울 수 있어야만 신이 무엇인지,
신성이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허심자는 복이있다.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는
진리의 핵심과 정수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예수의 가르침을 보면 안다고 아는
지식보다는 역시나 깨달음이
중요한 것임을 가르친 것이었습니다.
아는 것보다는 깨달음이 중요합니다.
태산같은 성경 지식이나 성구나 교리를 아는 것은
그저 내가 안다~하는 머리속의 지식일 뿐입니다.
깨달음에서 나오는 지혜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칼빈의 교리체계 등은 깨달음에서 온 것이
아니라 인간의 에고와 잔머리에서 나온 상상입니다.
지식은 자기 에고를 장식하는 것이요.
에고를 자랑하고, 에고를 부풀리는 길입니다.
그것은 생명의 길이 아닌 종교의 길입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이 길로 달려갑니다.
이 길은 종교조직과 계급, 직분의 길이며,
나는 무엇을 믿노라. 아노라하는 자기과시와
공치사나 하는 길입니다. 그래서 결국은
사람의 인정받음과 사람의 영광을 취하는 길입니다.
※공치사의 뜻
자기가 한 좋은 일을 스스로 칭찬하고 자랑함.
그래서 지식의 길, 아는 길은 넓은 길이요.
깨달음의 길은 좁은 길이 됩니다.
깨달음은 마음을 비우지 않고는
결코 얻을 수 없는 것인데, 이는
거듭나는 것이요, 견성, 득도, 돈오입니다.
그래서 좁은 길, 깨달음의 길은
나는 날마다 죽노라하는 마음을 비우는
길이요. 자기 십자가를 지고 가는 길이요.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는 길이요.
에고의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목 박는 길입니다.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내 안에 그리스도의 의식이 산 것야 말로
신으로(하나님으로) 나아가는 신성의 길이요.
그리스도의 길이자, 깨달음의 길이 되는 것입니다.
모든 종교의 핵심은 자각(=깨달음)입니다.
더 많이 얻고, 더 불리고, 더 많은 축복을 받고
더 많이 가지려고 하는 길은 ■ 넓은 길입니다.
더 큰 교회당, 더 많은 교인수를 향한 탐욕을 숨긴 채,
"전도는 하나님의 지상명령" 운운하여, 정당화하는
삯꾼의 탐욕에 속거나, 동조하여 휘둘려서는 안됩니다.
■"더 많이! 더 크게!"
로 달려가는 길은 사망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더 높은 천국, 더 많은 상급을 가지려고 하는
영적인 탐심과 욕심을, 하나님의 뜻인냥 성구로
그럴듯 하게 포장한 종교적 망상은 어리석음일 뿐!!!
삯꾼이란, 여기서 하나, 저기서 하나, 성구를 뽑아와서
자기 유리한대로 써 먹는, 능수능란한 사기꾼들입니다.
무조건 아멘 아멘 하다가는, 그놈의 종이 되버립니다.
그 놈 아가리에 끝없이 헌금과 새신자를 넣어줘야만
그 놈이 신도를=종을, 설교로 두들겨 패지 않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 (눅9:58)
■ 더 많이! 더 크게!를 향해 달렸던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 삯꾼들과는 정반대로
빈 마음, 빈 몸으로, 사역하셨던 예수님처럼
오직, 값없이 주고 나누려고 하셨던 예수님의
삶과 그의 발자취가 좁은 길이요 천국길입니다.
아버지 것이 다 내것이므로
얻을 것이 달리 없는, 욕심없는 믿음과
너와 나라는 주객이 끊어지고 차별이 끊어진
순수한 믿음이, 예수께서 가지셨던 믿음입니다.
"이르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마태 18:3)
천국의 상태는 어린 아이와 같은 상태,
지금 여기 현실에 충실하며 소유가 아닌
존재만으로 그저 즐거운 것이 그들 의식입니다.
닥치는 환경을 그저 순진무구하게 받아들이는
수용하는 자세, 또한 순전한 영적 태도입니다.
이는 서로 부끄러워 하지 않는 타락 전,
에덴 동산에서의 순수한 아담과 하와의
의식 상태와 같은 것이기도 합니다.
대자연 속의 한송이 백합화 같이 지극히 순수하여
아름다우며 꾸미지 않은 자연스러움입니다.
허심자=어린아이와 같음=타락전 의식상태.
고로 자각의 자리, 깨달음의 자리,
영과 접속하는 자리, 영과 하나되는 자리,
무아와 무심의 자리야말로
천국에 합당한 의식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ㅡ예수 그리스도의 향기ㅡ
Ps 그리고 지난번 보낸 메일에 오타가 너무 많았습니다.
죄송합니다.꾸벅 (^.^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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