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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 있다는 것은

에덴촌 2022. 7. 22. 20:53

말은 그럴듯 하고 뺀지르르한데

풀 소유의 가짜들이 있는가 하면

말과 행동에서  자신을 내세우지도 않고

자기 이름을 드러내지 않는 사람이지만

그렇게 그저 소박하지만

숨겨진 보석과 같은 사람도  있습니다.

이들의 단순하고 소소한 말이라 할지라도

깨우친 자들에게는 그 말에 향기가 있습니다.

 

"내  기도로 누굴 고쳤네. 기적이 일어났네"

블라 블라 자랑하기 바쁘고 

소리 높여 떠들어대길 좋아하는

■이단 사이비 교주나 삯꾼들의 특징은

아이러니하게도

■ 능력과 기적, 성령의 나타남입니다.

 

성공한 이단, 사이비나 성공한 삯꾼들 

중에서, 치유의 은사가 없는 자들을

제가  본 적이 없을 정도니까요.

 

마7:21~23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능력이 나타나고 

신유의 은사가 나타나는 것으로써

진짜인지 가짜인지를 분별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는 뜻입니다.

 

이런 분명한 지적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능력이나

성령의? 은사의 나타남에 넋을 빼앗기고

마침내 그 삯꾼과 그  늑대의 그물에 

자진해서 걸려들어 그들의 충성스런

■노예와  ■먹잇감이 되고 맙니다

 

이단 사이비 교주들이나 삯꾼들, 이런

오만한 자들을 무지한 자들이 볼 때에는,

능력이 있어보이고 매혹적으로  보입니다.

사람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에고를 만족시켜 주면서,

교주나 목사  자신을 믿고 따르도록 합니다.

그들은

알록 달록 아름다운 무늬로 위장하여

사람의 양심과 영혼을 마비시키는

치명적인 지옥의 독소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자들은 극소수입니다.

 

오랜 세월을 휘둘리면서 뜯기고 당하고 나서야~

망하고 파산하고 나서야~  심지어는 죽고나서~ 

비로소

그들 실체를 알게 되는 영혼들이  많습니다.

참으로 안타깝고 답답한 노릇입니다.

아래 글은

깨우친 자의 향기가 나는 글입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우리가 수행을 하는 것은

온전한 나 자신이 되는 문제이다.

아이러니 하게도

온전히 ‘나 자신’이 될 때

그 때 비로소 온전한 ‘전체’가 되는 것이고,

법계(하나님. 법신)과 하나가 되는 것이다.

수행을 하고 있을 때

내가 비로소 나 자신이 될 수 있다.

 

그런데 우린 대부분의 시간 동안

나 자신으로 살지 못하고

늘 무언가로 또 누군가로 산다.

나를 규정지을 때

꼭 다른 누군가와의

비교나 판단 분별이 개입된다.

그러다 보니 나라는 순수한 존재가

좋고 나쁜, 옳고 그른, 잘나고 못난,

지혜롭고 어리석은,

수행을 잘 하고 못 하는

그런 파단의 존재가 되고 마는 것이다.

‘나’는 그냥 ‘나’

자신으로써 남았을 때 가장 평화롭다.

누군가와 비교 판단하여

나 자신을 잃어버렸을 때,

누군가 보다 더 낳거나

혹은 못난 사람이 되었을 때

모든 문제가 시작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수행을 한다는 것은

그저 ‘나 자신’이 되는 문제인 것이다.

지금 이 순간의 나 자신이면 그만이지

다른 어떤 순간을 바랄 것도 없고,

다른 누군가와 견주어 질 것도 없다.

보통 사람들은 삶의 목적이

'누구처럼' 되는 것에 있다.

그러나 그러한 바램은 지금 이 순간

'나 자신'으로 존재하는데서 오는

충만한 하나됨에서 멀어지게 할 뿐이다.

누구처럼 되고자 한다고 했을 때,

지금 이 순간의 나 자신에 대해서는

만족할 수 없다는 말이고,

그랬을 때 우리 안의 평화는 깨지고 만다.

햇살은 햇살대로 바람은 바람대로,

나무는 나무대로, 꽃은 꽃대로

모든 것이 온전한 법신불(하나님)의

나툼이며,

대자연의 조화로운 어우러짐이다.

나무는 꽃이 되기를 바라지도 않고,

꽃이 나무가 되고자 몸집을 불릴 것도 없이

이 세상 모든 존재는

그들 자신으로써 온전하게 존재한다.

꽃은 꽃대로, 나무는 나무대로,

바람은 바람대로

저마다 자신의 모습으로써

온전한 우주의 법칙에 동참한다.

다만 사람들만이

'자기자신'으로 존재하는 것을 바라지 않고,

'누구처럼' '남처럼'되고자 바랄 뿐이다.

그러므로 사람들만이 대자연 법계의

조화로운 법칙에 따르지 못하고

수도 없이 번뇌를 일으키며

세상을 파괴하고

자신을 어둡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행복이란,

우리가 그토록 바라던 자유며

평화란 다른 어떤 미래의 일이 아니며,

다른 존재처럼 되는데서 오는 것도 아니다.

다만 '지금 이 순간'

오직 '나 자신'이 되는 것일 뿐이다.

지금 이 순간

나 자신으로써 그냥 좋은 것이다.

대 긍정으로 그저 큰 좋은 마음일 뿐이다.

수행하며 사는 삶의 순간 또한

그냥 그것으로 좋은 것이다.

관하고 있는 순간

이렇게 깨어있는 그 자체만으로 좋은 것이다.

온전하게 깨어있을 때는

내가 나 자신이 된다.

 

[법상스님] 수행이란 나 자신이 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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