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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나에게 가르치려 애쓰는 것

에덴촌 2022. 7. 20. 17:24

아래   아디야 샨티의 지적은

깊은 울림과 여운이 남는 글입니다.

 

삶이  나에게 가르치려  애쓰는 것을

내가 보지 못할  때,

내가 배우지 못할 때,

내가 깨우치지 못할 때,

내가 돌이키지 않을 때,

 

나의 조건과 상황, 즉

삶이 더  심각하게 나빠진다는 의미입니다.

내 아집과 고집을 내려놓을 때까지...

나의 분수에 넘치는 소비나 

과도한 헌금을 멈출 때까지...

(과도한 헌금 때문에 집안이 망해서

아베를 살인했다는 살인범의 어머니도

기독교-사이비인 통일교였다죠?

제가 볼 때는 기독교나 기독 사이비나

그 행태가 별반 다를 것이 없습니다.

교인수 100명만 넘어가도 삯꾼들은

자기 자녀들 다 유학보내고 헌금으로

흥청망청 쓰며 황제놀음 하더군요.)

 

내가 잘못 가고 있음을

깨닫고 돌이킬 때 까지...

점점 더 힘들어 지거나 

궁핍해진다는 의미입니다.

 

가장 사랑하는 자녀들이

나를  가르치기가 쉽습니다.

꿈쩍도 안하는 외통수, 고집불통이라도

자녀 문제에서는 애간장을 녹이니까요.

그래서 자녀는 매사에 우리의 스승입니다.

그렇게 하는 일마다  꼬이거나

막히거나 안 풀려서 망합니다.

그래도 계속 아집만 내세운다면, 마침내

건강까지 무너지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근심 걱정 되는 일이 닥쳤을 때,

폭풍우가 휘몰아 치는 날에는,

몸을 낮추고 겸손하게  스스로를

성찰하는 일이 필요하다는 의미이겠죠.

내 생각과 마인드, 말과 삶의 방식에

전면적으로 수정이 필요한 것은 없는지

찬찬히 점검하면서 돌아봐야 합니다.

만약 그렇게 하지 않고

계속 내 방식대로만의 삶을  고집한다면

가도 가도 가시밭길이요,

가시방석이 된다는  의미입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삶이 보여주려 애쓰는 것을

우리가 보려 들지 않을때는,

보아야만 할 그것을 

우리가 기꺼이 보려 할때까지

삶은 그 강도를 높여갈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삶은 그 자체로서 우리의 가장 큰 우군이다.

자주 쓰는 말로,

삶이야말로 가장 위대한 스승인 것이다. 

 

우리들 대분분에게 

깨달음(견성=거듭남)으로 가는 길은

장밋빛 여정이 아니다.

우리는 바로 이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된다. 

 

사실을 말하자면,

깨어남을 원하는 사람의 대부분이

실제로는 깨어나기를 바라고 있지 않다.

 

그들은 그들 자신만의

■각색된 깨어남을 원한다.

그들이 실제로 바라는 것은

자신의 '꿈꾸는 상태'속에서

정말로 행복해지는 것이다.

(에고의 종교안에서 안주하는 것이다)

 

하긴 그것도 괜찮을 것이다.

그것이 그 사람이 진화해온

영적 수준이라면 말이다.

 

-아디야 샨티 [깨어남에서 깨달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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