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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듭남=견성

에덴촌 2022. 7. 20. 17:19

견성[見性]

헛된 생각과 정신을 홀려 

생각을 흐리게 하는 모든 것을 떨쳐 버리고

자기 본래의 천성을 깨우쳐 앎.

[불교] 자기가 본래 갖추고 있는

불성을 깨달아 부처가 됨.

원어/견성성불(見性成佛)/백과사전에서 펌.

※불교에서는 견성을 깨달음이라고도 합니다.

 

기독교적으로 보면 견성은

"자신의 본래 정체성을 깨달아 예수가 됨"

즉 신이 된다는 것과 같은 의미입니다.

 

견성은

자신의 정체성을  본다. 깨닫는다.

자기 신성을 본다. 영원하고 참된

자신의 본래 모습  실체를 본다.

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즉, 하나님을 본다.

신을 본다. 성령을 본다.

자기 자신이 신이고 성령임을

본다, 깨우친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은 에고의 입장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에고의 노력으로는 알 수도 없고

도달할 수도 없는 경지입니다.

 

에고는 기껏해야 종교의 이름으로

동물이나 사람의 형상으로 상징되는

■우상 하나님을  믿을 수 있을 뿐입니다.

거기에 각종 규례와  교리, 종교 조직을

만들어,  출애굽기 32장 6절처럼 

아론의 금송아지같은 우상 하나님과

조직과 사람을 중심으로 빙빙 돌며 

제사(예배)를 지내며 먹고 마시고 

종교활동하며  뛰놀게 됩니다

 

우상  하나님을 신으로 숭배하고

그 우상을 믿고 의지하는 종교생활,

즉, 현세의 복과 내세의 복을 빌면서

더욱 우상을 의지하게 될 것입니다.

 

"에고의 종교"와 "참나의 깨우침"은

완전히 서로 다른 세계이며

차원이 다른 세계입니다.

에고의  우상 종교는,  교육이나 학습, 

세뇌를 통해 집단적으로 이루어지지만

참나의 깨우침은  잠잠한 명상 가운데

개별적으로 이루어지는 특징이 있습니다.

 

그러기에 에고의 종교, 교리와

참나의 드러남은 각자가 서 있는

토양자체가 서로 완전히 다릅니다.

하나는 인간의 에고 위에  서 있다면

하나는 참나=성령=불성안에 기초합니다.

그러기에 신을 알고자 하면 우선

에고가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누구나 유전적인 특징. 습성,

교육환경. 물려받은 종교나 탐심, 어리석음,

분노, 이기심으로 작동되는-육체적이고

동물적인 측면을 갖고 있습니다. 

탐진치, 이기심, 이것은 에고입니다.

우리는 이것으로 살아왔습니다.

 

에고로 살 때에는

참나가 감추어져 있는데 

이는 동전이 한면이 드러날 때

동전의 다른 면은  아래에 감추어져

있는 것과 같습니다.

동전의 양면이 동시에 위로

드러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자기 안에 신=참나가

있는지조차 모르고 살아가게 됩니다.

 

우선 에고가 무엇인지 알아갈 때

우리는 숨겨져 있는 신적인 측면인

참나에 접근할 수 있습니다.

 

에고는 

쉴새없이 생각합니다. 조잘댑니다.

생각이 멈춘 자리에 성령,신이 있습니다.

그래서 명상하고 수도하는 것입니다.

 

에고의 생각, 에고의 믿음, 에고의 관념.

에고의 이념. 주장,  에고의 마음과 

감정, 자신이 아는 것만을 고집합니다.

 

이런 고정관념을 깨기가 심히 힘듭니다.

그래서 깨달음에는 보통  오랜 명상과

수도의  세월이 걸리게 됩니다.

에고는 내가 옳다, 나만 옳다 하며

무지와 맹신.고집을 무한-반복합니다.

 

견성으로 가는 길은 내가 

하나님의 성전임을 깨우치는 길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인습과 고집으로 굳어진 

에고로 살고 있다는 것을 자각하는 것입니다.

에고의 생각을 관찰하고, 

에고의 맹신과 믿음을 관찰하고

에고의 무책임, 책임 떠넘기기,

죄 떠넘기기, 허황된 욕심을 관찰하고

에고의 마음을 관찰하다보면

어느 순간부터 에고가 아닌 성령, 즉

관찰자가 언뜻 언뜻 드러나게 됩니다.

참나가 드러나는 과정입니다.

에고를 끝까지 움켜쥐고 이 악물고 고수하면서

참나(하나님, 성령, 불성)를 알 수는 없습니다.

 

견성은 거짓된 나인 에고가 아닌

참된 나를 본다는 뜻입니다.

거짓된 나는 오래된 구습과 인습으로

똘똘 뭉쳐진 육신적인 나요,  

이기심 빼면 시체인 나입니다.

참된 나, 참나는 신(성령)입니다.

참나는 성령입니다.  불교에서는

참나를 부처이자 불성이라고 합니다.

성경에는 육의 사람과 영의 사람으로

표현되어 있는데, 바로 이 고귀한 신성

나의 참된 정체성을 보게 되는 것을

견성이라고 합니다.

 

견성은 거듭나는 것입니다.

영적인 나로 거듭나는 까닭에

영적인 눈, 영안을 뜨기 시작합니다.

견성은 깨달음과 동일합니다.  즉,

견성은 영원한 지혜, 참된 지혜를

얻어가는 출발점이 되는  것입니다.

 

자신의 본질이 육체가 아니라

육체를 입은 신이라는 사실을  

명료하게 보고 체험적으로 

알게 되는 것을 견성이라고 합니다.

 

"육체를 입은 신"인 나 자신의

참된 본질대로 사는 것이

바로 나 자신이 되는 것이며

바로 나 답게 사는 것입니다.

ㅡ예수 그리스도의 향기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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