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69년 헐리기 전의 청계천변의 조선광문회
조선말 고전문화의 보급에 힘쓴 조선광문회(朝鮮光文會)
청계천변의 중구 삼각동 7-1번지, 신축한 ‘센터-1’빌딩(전일 사법서사회) 부근에는 최남선(崔南善)·현채(玄采)·박은식(朴殷植) 등이 한국 고문헌의 보존과 보급, 고전 문화의 선양(宣揚)을 목적으로 경술국치(1910)되던 해에 설립한 조선광문회(朝鮮光文會)가 있었다.
경술국치 후 일제가 조선에서 해마다 진귀한 서적과 국보급 문화재를 반출해 가자 이에 충격을 받은 최남선 등이 조선광문회를 조직하여, 『동국통감』 등 17 종의 조선 고전총서를 발행하였다. 이 단체는 귀중문서의 수집·편찬·개간을 통한 보존, 전파를 위하여 고문헌을 최단 시일에 저렴한 가격으로 구입하여 인쇄하고, 가입회원에게는 실비로 배포하였다.
이에 따라 제1차로 역사책인 『동국통감』 · 『동사강목』 · 『삼국사기』 · 『삼국유사』 · 『발해고』, 지리책으로서 『택리지』 · 『산수경』, 민속학으로 『동국세시기』를 발간하였다. 국어학으로는 『훈몽자회』 · 『아언각비』, 고전책으로 『용비어천가』 · 『산림경제』 · 『지봉유설?』· 『성호사설』 · 『열하일기』, 문집류로서 『율곡전서』 · 『이충무공전서』 등을 간행하여 일제침략기에 한민족의 의식을 고취하였다.
이 사업의 주요 실무자는 장지연(張志淵)·유근(柳瑾)·이인승(李寅承)·김교헌(金敎獻) 등이었다. 이들은 수사(修史)·이언(理言)·입학(立學)의 3대 기치 아래 180여 종의 고전간행을 계획했으나 20종밖에 간행하지 못하였다.
또한 주시경(周時經)·권덕규(權悳奎)·이규영(李奎榮) 등은 우리나라 최초의 국어사전 편찬을 시도하였다. 그러나 이 일을 마치지 못하고, 1927년에 원고를 계명구락부에 넘겨주었고, 그것은 다시 조선어학연구회로 넘어갔다.(*)

조선광문회가 위치하던 현재 <센터-1> 빌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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