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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고 보니 모든것이 은총

에덴촌 2023. 8. 16. 20:43

■참자아는

고도 1만 미터 상공에서 세상을 

내려다볼 때와 같은 ■ '의식적인 자각'이다.

높은 고도에서 내려다보면 

전체 그림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듯이, 

영혼이라는 높은 곳에서 내려다 보면

삶은 모든 것이 완전하고 

중립적으로 펼쳐지고 있는 확장 자체이다.​

 

당신의 제한된 관점은 짜증을 내거나 

참을 수 없다고 판단하지만

■당신의 참자아는 

■가장 높은(좋은) 결과가 나타나도록 

■신뢰하고 허용하는 의식이다.

모든 것이 깨달음으로 나아가는 길의 일부이다.

모든 것이 깨달음으로 이끄는 촉매들이다.​

 

위에서  혹은 미래에서 세상을 보는

■초월적 의식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다면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일이 

■당신을 완전한 자아실현의 상태로 

■완전한 깨달음으로 이끌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될 것이다.

그 모든 것이 은총이다.​

(※ 지나고 보니 비로소 알게 되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요!  내가 그토록 

간절히 소원했었지만  이루어지지  않아서 

그 당시에는 세상 다 무너진 것 같았는데,

내 뜻대로 됐다면 큰 일 날 뻔한 일이었음을,

지금도 가슴을 쓸어내리는 일이 있습니다

지나고 보니 그 모든 것이 은총이었습니다.)

 

일어나는 모든 일이, 모든 사물이,

있는 그대로 완전하다.​

모든 경험은 당신을 깨우기 위해 창조되었다.

(사람들은 병과 죽음을 엄청 큰 일로 여기거나

두려워하거나 필사적으로 거부합니다만...

죽음은 삶 만큼이나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죽음은 삶과 동전의 앞뒷면과 같습니다.

삶이 있으면 죽음이 있고

죽음이 있어야만 또 환생과 삶이 있습니다.

환생이 있어야  자각, 견성, 깨달음이 가능하고

더 높은 단계에로의 차원상승도  가능합니다.

구천을 헤매는 영가들도 집으로 갈 수 있습니다.

인생은 길고 긴 것 같아도 뒤돌아보면

잠시 잠깐이요, 한 여름밤의 꿈과 같습니다.

그러니 생로병사와 삶과 죽음은 자연스러운 

일이며 완전한 사랑안에서 펼쳐지는 은총입니다.)

 

세상 곳곳에서 불협화음을 겪을 만큼 겪은 결과, 

■가식과 ■에고 위주의 구조들이 무너지고 있고,

사랑, 친절,  인류의 하나됨에 대한

실상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변질된 종교는, 가식과 에고 위에 서 있습니다.

삯꾼 집단일수록, 그 집단이 칭찬하는 믿음일 수록

모든 것에 더욱 가식적인 인간이 되어버립니다.

겉 다르고 속 다른 뺀질이로 변신하거나

천사인척 하는 착한 아이 병에 걸려버립니다.

위선적인 말투, 행동, 드러냄, 출석, 눈도장, 아부,

집회의 참석여부, 십일조를 내나 안내나?

헌금을 얼마나 많이 하나? 하는 작위적인 행위와

바래새적 믿음이 그들의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됩니다.

※작위적 [作爲的] 뜻

"자연스럽지 못하고 일부러 꾸며서 한 듯한 것"

뿐 아니라 에고가 더 강화되면서

아집으로 돌덩어리같이 굳어진 가슴이 됩니다.

닫혀진 가슴, 굳어진 마음의 믿음이라면

다시 태어나는 수 밖에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사람의 칭찬과 영광을 간절히 원하면서

종교적 위선과 가식, 허위의식의 가면으로

자신도 모르게 속이 병들어 갈 수 있습니다.

위선적이고 거짓된 종교단체,

이단 사이비일 수록, 다단계 사기꾼과 똑같이 

속임수로 전도하며 세뇌로 홀리고 미혹합니다

믿기만 하면,  가입하기만 하면, 참여하기만 하면,

대박날 것처럼,  천국 갈 것처럼 속인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광명한 천사로 위장한 악마와

악귀, 귀신에 홀리듯 자신도 모르게 홀리게 되고,

자기 영혼을 도둑맞는 줄도 모른 채, 죽어가고

망해가고 있는 줄도 모른 채, 넋놓고 망하게 됩니다)

 

■우리는 계속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더 멋지게 보이려고 애쓰면서

자신의 체면과 신앙의 허영심을 유지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우리의 참자아를 무시하고

참자아로부터 분리된, 무지의 삶을 살게 되면, 

필연적으로 ‘나는 무가치하다’는 느낌이

생겨나게 됩니다. 

우리는 남들이 우리에게 말한 것을

신뢰하고 믿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속 깊은 곳에서는(영, 성령으로는)

거부하고자 하는 영감이나 느낌이 있습니다.

겉 다르고 속 다른, 구호 따로 내용 따로인 모순과

슬픔, 불안, 걱정, 두려움이 내면 깊은 곳에서

해결되지 못한 채 여전히 웅크리고 있습니다.

그 모순과 그 불안함, 그 미묘한 불만을

섬세하게 살펴보십시오.

그 소리를 들어보십시오.

그것은 이제 그만 변화하라는 신호이고,

내 영의 깨어나라는 나팔소리입니다. 

 

■우리는 하나됨과 사랑에 대한 

원초적인 갈망에서 열심히 역할극을 하지만, 

■우리가 추구하는 하나됨과 사랑의 경험은 

다른 사람들의 인정을 통해서는 올 수 없습니다. 

■그것은 오직 우리 안에 있는 

■신성의 알아차림을 통해서만 올 수 있습니다.

 

■ 자기 자신에 대한 진정한 가치와 수용은, 

■우리가 우리 자신의 영혼에 

■ 뿌리내릴 때에만 가능합니다.

 

존재만으로 이미 충분한 당신 -파나슈 데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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