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을 탐하여, 거짓말을 일삼다가
6개월만에 죽은 한 주지스님 (실화)
돈을 탐하다가, 신의 벌을 받아 죽어가던
무당의 (너무 늦은 후회의) 눈물
무당의 눈물이라는 이 영상은
정말이지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줍니다.
"삼재다 구구구제다" 하면서 제사(에배)에서
거짓말과 협박을 동원하여 오랫동안 몸에 밴
삥뜯기 스킬(헌금뜯기 기술)을 시전하는
한 사기꾼 무당을 보시나요?
"일천번제다.십일조다. 화목제다
속죄제다 주일헌금이다 생일감사헌금. 심방감사
개업감사헌금이다" 하면서 100여가지가 넘는
별 희안한 이름을 다 갖다 붙혀서라도
신도들의 호주머니를 털고 가산을
삼키는 삥뜯기 고수인 삯꾼들의 작태와
서로 붕어빵처럼 닮아있습니다.
값없이 돈도 없이 그저 주면서 섬기고
봉사하는 자세로, 사역을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시몬처럼 구원과 축복을 사고 파는 짓을
예배의 당연한 관행으로 만들어 놓은
저들은 그 추악한 죄악를 어떻게 다 감당할까요?
그러면 가난한 자들과 병든 자들이 어떻게
마음 놓고 편히, 기도하는 집으로 가겠습니까?
없는 자들은 가차없이 소외당하게 되고, 다들
헌금내기 경쟁, 섬기기 경쟁, 충성경쟁, 직분 경쟁,
목사에 대한 아부떨기 경쟁에 몰입하게 되고
경쟁에 이긴자만 감투를 쓰고 가오잡고 나대는
그 따위 썩은 집단이 주님의 교회이겠습니까?
그런 삯군교에 무슨 구원이 있겠습니까?
■고급신령과 교통하는 무당이 있는 반면
저급령이나 귀신과 교통하거나 빙의된
무섭고 괴상한 무당들도 많이 있습니다.
■ 고급령의 파장과 연결된 목사가 있는 반면
저급령이나 귀신과 교통하는 목사들도 많습니다.
목사냐? 사제냐? 스님이냐? 무당이냐? 하는
■표면적인 종교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문제의 본질은 어떤 종교냐, 어떤 직분이냐?
하는 겉모습이나 외모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이면적인 것으로써
그 중심의 깨끗함, 신실함, 선함과 진실함이며
거짓과 잔머리, 욕심에 찌든 목사라면
성경구절을 줄줄 읊어대나
그 본질은 본질은 악령의 교회일 뿐입니다.
그러면 삯꾼들은 왜 저 무당이나 스님처럼
즉각적인 심판을 받지 않을까요?
즉각적인 심판을 받는다는 건
그나마 다행한 일일 수 있습니다.
육은 멸하고 그나마 그 영혼은 구원할 때
행하시는 신의 자비일 수도 있으니까요.
즉각적인 심판을 받지 않는 경우는
신의 섭리가 따로 있을 경우입니다.
눈 있는 자들은 누구나 보게 하고
귀 있는 자들은 누구나 듣게 하여
모든 사람이 충분히 느끼고 알게 하시려고
더럽고 추악한 모습 그대로 방치해 두십니다.
그리고 신은 오래된 무당이나 성공한 종교인
=스님. 사제. 신부, 혹은 목사라고 해서
함께 하시는 것이 아니라 외모적으로 볼품없고
아직 순수한 햇병아리 같은 신참이라도
■ 순수하고 정직한 사람과 함께 하신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저 무당과 저 스님은 죽지 않고
충분히 더 살 수도 있었습니다.
듣기 싫은 쓴 소리나 바른 소리를 한다면,
비록 어린 아이가 말한다해도
그 것을 신의 소리로 듣고 겸손히
순종했다면 고침을 받았을 것입니다.
입에 쓴 약이 몸과 영횬을 치유합니다.
"니 까짓게 감히 나한테?" "가소롭다" 같은
■중심의 오만과 교만을 버리지 못한 그들은
문제나 질병에서 치료받을 수 없었습니다.
죽은 무당은 대선배 무당이지만
자기 죄를 지적하고 치유해 줄 수 있는
햇병아리 무당에게 겸비하게 순종했다면
후회의 눈물도 흘리지 않고, 죽지도 않았겠지요.
자기 생각과 자기 믿음을 고집한 무당은 신이
주신 기회를 엎어버렸고 결국 죽고 말았습니다.
신이 설정한 마지막 관문인 겸손의 관문,
신으 커트라인, 신의 시험을 넘지 못하고
결국 죽게 되는 것을 우리는 봅니다.
종교의 본질과 원리는 모두 같습니다.
"선하게 살자. 정직하게 살자.
뿌린대로 행한대로 받게 된다.
신이 있다. 사후세계가 있다." 는 것입니다.
다만 정상으로 올라가는 방법이 다른 것 뿐입니다.
ㅡ예수 그리스도의 향기ㅡ
'- 글 - > 자유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영으로 보는 것 (0) | 2023.07.05 |
---|---|
신앙은 교제하는 것이다. (0) | 2023.07.05 |
목사의 이중직에 대하여 (0) | 2023.07.03 |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할 존재 (0) | 2023.06.30 |
삶은 하나의 이야기 (0) | 2023.06.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