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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은 내부의 신을 만나는 것

에덴촌 2023. 5. 4. 22:52

명상은 내부의 신을 만나는 것

 

기도와 명상은 동전의 앞뒤 면이다.

왜냐하면

기도는 우리가 신에게 말하는 것이고

명상은 신의 말을 듣는 것이기 때문이다.

 

“명상이란 바로

자신의 내부에 있는 신을 만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지상에 있을 때

명상에 대해 많이 배우면 배울수록

이곳에서 더 빨리 진보할 수 있다.

 

명상을 할 때는

처음에 깊게 호흡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라.

깊게 호흡해서 우리의 물질적 육체가

자주 품고 있는 유독하고 유해한 가스를

몸 밖으로 내뿜어야 한다.

 

더 깊게 들어가라.

신이 당신 존재의 핵심임을 알게 되리라.

이 고요함(명상상태) 속에서

적어도 하루에 15분~20분을 보내도록 하라.

신이 원하시는 대로 너에게 말하게 하라.

 

ㅡ루스 몽고메리의

전생과 환생, 저 너머의 세계ㅡ중에서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기독교인인 우리에겐 

명상이 좀 생소합니다만

명상이란 근원(영)에 접속하는 방법입니다.

 

전투적으로 살아가야 하는 일상의 삶에서

우리는 주로 에고=거친 표면의식을 사용합니다.

명상은 표면의식을 내려놓고 깊은 영(신)의식, 

초월의식, 초의식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표면의식, 에고는 걸핏하면

과거에  가 있거나 미래에 가 있습니다.

과거를 꼽씹으며 후회하고 아쉬워하거나

미래를 생각하면서 염려하고 걱정하느라

정작 지금! 여기!는 잊어버립니다.

에고는 과거와 미래를 번개처럼 왔다갔다,

생각하고 생각하며 끝없이 생각합니다.

명상은  이런 정신없이 바쁜 에고(표면의식)를

중지시키는 것이고 내려놓는 것입니다.

 

모든 문제들과 해야 할 일, 염려, 걱정들을 

"몰라...  괜찮아... "로 내려놓는 것입니다.

번잡스러운  마음과 생각의-라디오를

잠재우는 것이고 꺼버리는 겁니다.

그러나 쉽게 사라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끄고 끄고 또 꺼도 계속 올라오는 생각들,

그러다 계속 하다보면  어느 순간

에고가 잠잠해지면서 

잠들어 있던 영의식이 떠오르게 됩니다.

(로마서 8:6) 상태가 됩니다.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고요하고  잠잠하며 세미한 가운데

명료하게 차 오르는 생명력과 평안이 바로

초의식, 신의식, 영의식, 참나의식입니다.

평안과 행복으로 차 오르는 의식이며

위로와 치유로 스며나오는 고차원 의식,

바로 하나님 의식이요, 신의 의식입니다.

※‘명상(meditation)’은  ‘치유한다’라는 말,

‘메데리(mederi)’ 라틴어에서 파생되었습니다.

 

나의 외부에서

돈이나 사람으(친구 or 배우자)로~

물건(집. 차. 명품)으로~

행복을 찾으려 한다면 항상 그 때뿐

또 다른 욕심과 갈구가 일어나서 실패하고 

실망하게 되는데,   나의 외부에서 오는 

모든 것들은 변하고 낡고 사라지는 것들이며

결국, 헛되고 헛되다는 것을 자각하게 됩니다.

 

명상을 하면

자기 안에 계신 신성, 참나로부터 참된 것과

모든 좋은 것들이 흘러나옴을 깨닫게 됩니다.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 (약1:17) 영원한 기쁨과 지혜가

외부에서 눈이 오듯 막 떨어지는 게 아니라

나의 내부, 신성,  근원으로부터 

샘 솟는다는 것을 절실하게 깨닫게 됩니다.

 

그러니 분주하고 번잡한 종교행사에

열심일 수록, 오히려 영원한 진리나

참된 깨달음과는 더 멀어지게 됩니다.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

(롬10:3) 말씀처럼

에고의 지식과 에고의 교리로써 진리를

곡해하기 때문에 자기 외부만 바라보게 되고,

교리나 교주, 삯꾼같은 사람을 따르게 되면서

헛된 육체의 소욕를 이루려 하게 됩니다.

 

천국이 자기 밖이 아닌, 자기 안(밭)에

감추인 보화(감추인 하나님)인 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한 채, 그저 소경된 교리와

에고의 판단과 에고의 맹신과 허영으로만~

달려가는 신앙생활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신앙은 황량한 사막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같은 자리에서 계속 돌면서 해메는 것과 같습니다.

확실한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고

지치고 목마른 상태에서 그저

"카더라" 통신만 부여잡고 왔다갔다 하다가

결국에는 다 부질없음을 느끼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기 안에 있는

이 비밀을 깨닫지 못한 사람들은

겉 형상(교회당, 예배의식)세우는 일과 직분으로

겉모습을 장식하거나 드러내는 헛된 일들로써

소중한 인생을 낭비하게 됩니다. 어떤 이들은

미워하는 일,  증오하는 일. 멸시하는 일을

하나님 뜻으로 믿고 "너와 나"를 분리시키는 일~

"네 종교, 내 종교"로  분리,분쟁하는 일~로써

애쓰고 힘써서 사역하고 목회를 합니다.

비판하고 심판하는 에고의 의, 자기의 의를 

하나님의  뜻이고 하나님의 의인냥 믿게 됩니다.

 

원수까지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의" 대신

"원수 빨갱이를 없애자. 꼭 척결해야 한다."

 "자기 의"를 더 내세우게 됩니다.

"네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가장 큰 계명은 안중에도 없고

"동성애니까 차별해야 하고 타종교인이니까

배타해야 한다" 며 큰소리 치게 됩니다.

 

ㅡ에수 그리스도의 향기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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