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들은 절대계에서는
체험할 수 없는 것을 체험하기 위해
상대 영역,
상대계라고 부르는 것 속으로 들어왔다.
영혼=신들이 육화하여 물질세상에 와서
체험하려는 것은 ‘참된 자신’이다.
절대계에서는
절대를 알 수는 있지만,
체험할 수는 없다.
신들의 바램=영혼들의 바램은
체험으로 자신을 아는 것이었다.
절대계에서는
‘자신’의 어떤 측면도 체험할 수 없는데,
그 영역에서는 어떤 측면도
자기가 아닌 것이 없기 때문이다
절대(=일원성)란, 말 그대로 그냥 절대다.
‘전부의 전부’이고, 알파이자 오메가이다.
그 사이에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절대성”에는 정도(程度)란 게 없다.
상대(=이원성)의 정도는
상대계에서만 존재할 수 있다.
상대계가 창조된 것은 반대가 되는 것을
체험함으로써 자신(신)의 어떠함을
알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절대계에는
장대함말고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으니,
장대함 자체도 “존재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 그것은 체험될 수 없고,
절대계안에서는 체험으로 알아질 수 없다.
다시 말하면 장대하지 않은 것 없이는
장대함을 체험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Ps/온통 전부, 사랑과 기쁨만 있다면
사랑이 뭔지 기쁨이 뭔지, 잘 모르게 된다.
사랑이 아닌 것-증오와 고통을 체험할 때
비로소, 사랑을 온전히 알 수가 있는 이치)
사실 인간은 신과 전부와 하나다.
바로 이것이 생명의 장대함이다!
하지만 영혼이 전부와 하나인 동안에는
그 외에 다른 것은 존재하지 않으니,
전부와 하나로 있는 그 장대함을 알 수 없다.
전부와 하나로 있는
신, 신성, 하나임=하나님이
그 장대함을 체험할 유일한 방법은
전부와 하나이지 않는
어떤 상태나 조건을 창조하는 것뿐이다.
(Ps/ 일테면 대양에서 한 덩어리 바다로 있다가
한방울의 물로 떨어져 나오게 하는 것 뿐이다)
궁극의 실체인 절대계에서는
모든 것이 하나이기에,
어떤 것이
전부와 하나이지 않기는 불가능하다.
그러나 전부와 하나가 아니라는 환상을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지는 않았다.
따라서 상대계(물질계)가 창조된 건
이 환상을 만들어내기 위해서였다.
그것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비슷한 것이다.
그 나라에서는 사물들이
자신인 듯이 있지 않고,
자기 아닌 것으로 있는 듯하다.
이런 환상을 만들어내는
주요한 도구가 인간의 에고다.
에고는
자신을 ‘자신의 나머지 모두’와
분리된 것으로 여길 수 있게 해주는
그런 장치다. (에고는 자신을
신과도 동떨어지고 타인과도 동떨어진
한 개별존재로 생각하는 부분이다)
사랑이 아닌 고통, 충만이 아닌 결핍.
평화가 아닌 전쟁, 영생이 아닌 죽음같은
이원성, 상대성을 체험하기 위한
장치가 에고이지만
너무 강한 에고는 좋지 않다.
에고는 분리라는 환상을 써서
‘참된 자신’인 ‘하나임’의 체험을
더 잘 이해하고 식별하는 것이지만
그러나, 에고가 너무 커져
분리된 자신밖에 볼 수 없다면,
분리된 자기 종교밖에 볼 수 없다면,
신과 분리된 종교안에 갇혀버린다면,
신과 합일된 자아를 체험할 기회는
완전히 사라지고, 집나간 탕자로 비유된
육화된 신(왕자)인 너희는 너희의 궁궐인
아버지(집)으로 돌아오는 길을 잃고 만다.
너희는 분리의 세계인
그 환상의 물질세계에서
그야말로 미아가 되어,(=신이 아닌
관념에 묶인 귀-신, 떠도는 귀-신이 되어,
수백년, 길게는 천년동안 떠돌게 된다.
많은 생애 동안 길을 잃은 채
그 환상 속에 남아 있게 된다.
마침내 스스로 깨달아
스스로 자신을 끄집어(구원해)내거나,
혹은 다른 누군가가-다른 영혼이나-
천사가 너희를 거기서 끌어낼 때까지...
이것이
“자신을 자신으로 돌아가게 한다”
는 의미이고,
기독교 교회들에서 (오해하여) 말하는
“구원”이라는 개념이 뜻하는 바다.
하지만
●기독교 교회들이 저지르는 잘못은
자기네와 자기네 종교만을
(선민이니, 예수믿음만 구원이니 하면서)
“구원받을” 유일한 길로 선언함으로써
●분리의 환상을, 도리어 강화했다는 것이다.
(그렇게함으로써
영혼들이 신의 궁궐로 돌아가는 길목을,
바른 믿음, 바른 교리라는 명목으로, 가로막아서
●천국으로 들어가는 문을 닫아버렸다.
분리된(바리새적) 우상신을 경배하고
분리된(바리새적) 에고의 종교-외도-에 빠져
자신도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고
남들도 못 들어가게 막는 분리의 믿음을
매주 교육하거나 훈련하며 강화한다.)
※바리새인은=‘분리된 자’ '분리하는자'라는 뜻
(바리새인 아닌 목사찾기가 힘들 정도입니다)
(그들은 남들이 쉴 때, 쉬지도 못하고
남들이 놀 때, 놀지도 못하고 종교조직에
노예처럼 묶여서 열심히 돈까지 갖다바치고
바리새적 종교생활에 충성을 다했는데 막상
죽어보니 독재자처럼 숭배해왔던 그 신은 없고
스스로 캄캄한 흑암에 처하게 된 것을 자각할 때,
얼마나 기가 막히고 억울하고 원통할까요?
저는 목사 귀신의 신음소리까지 여러번 듣고
벌벌 떨면서 도망쳐 나온 경험이 있으므로
이런 가르침이 더 애통하게 다가옵니다)
영적 실체를 체험하기 위한 도구로써
에고를 다스리는 중이라면, 좋은 일이지만
하나임의 실체를 체험하지 못하게 막으려고
에고가 종교나 교리로 너희를 이용하는
중이라면, 에고를 강화하는건 좋지 않다.
그것은
너희가 물질세상에 와서 하려는 바를
못하게 방해하고 막는 만큼 “좋지 않다”.
하지만 너희는 자유의지로 이 물질세계에서
언제나 자유롭게 삶의 방식을 선택할 수 있다.
■ 너희가 믿는 신은 실재가 아니다.
너희가 능력 있다고 믿는 신은
에고가 꾸며낸 것이다.
그것은 궁극의 실재와는
아무런 관련도 없는,
너희가 아무런 근거 없이 만들어낸 신이다.
사람이 여전히 내 종교만 옳고
내 믿음만이 최고라서,,
모든 것이 다 ‘하나’ 이고
진리의 다른 모습이고 형태라는 것을
체험하지 않는 쪽이 더 좋다면, 그래서
내 종교 취미생활만 계속 즐기고 싶다면,
신과 네가 하나임을 깨닫는
체험은 하지 않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때 너희는 분리와 환상과
두려움과 외로움과 아픔을
●충분히 겪고 나서야 비로소
궁궐로 돌아올 내면의 길을 찾으려 할 것이고,
그때서야 비로소 너희는 거기에 있는
참나를, 언제나(always)
거기에 있었던 참된 신을 발견할 것이다.
- 신과 나눈 우정 110~115쪽
(Ps/ 이해를 돕기위해 괄호안에
저의 첨언이 들어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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