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자기 자신을 표현하고 살라는,
그럼으로써 당신의 인생과 세상을 밝히라는
부름을 받고 이 지구에 온 것이다.
일어나는 모든 일, 모든 혼란은
저마다 자신의 참자아를 기억하고
깨닫게 하기 위한 장치다.
당신은 참자아를 알아가고 있는 영혼이다.
당신의 인생에 나타난 것은
그 무엇이든 그 누구이든
모두 우주의 목적을 가지고 있다.
그 목적이란, 유한한 육체를 가지고 살아가는
당신이 아무런 한계 없는 당신 자신의
'신성한 본성' 을 알게 되는 것이다.
'신'은 우리에게
그 어떤 것도 요구하지 않는다.
신은 자기 자신에 대한
우리의 믿음도 필요하지 않다.
ㅡㅡㅡㅡㅡㅡ첨언ㅡㅡㅡㅡㅡㅡ
(※ 사람에게 무엇을 요구하는 신은
인간 에고가 만들어낸 신입니다.
눈 먼 자들이 숭배하는 우상입니다.
인간에게 나를 찬양하라! 숭배하라!
나를 믿으라! 내게 헌금을 바쳐라!
하는 신은, 그저 인간 에고의 입맛에 맞게
세세하게 만들어낸 허상의 하나님입니다
숭배와 믿음, 돈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는
정치 기득권자와 종교 기득권자들과
세상 권세를 잡은 탐욕자들이 종교의
경전에 덧씌워 둔 그들의 희망사항입니다.
육신과 에고에 집착하는 저급령이라면 가능한 한
더 많은 인간들이 믿어 주기를 바라고, 찬양해주고,
숭배해 주면서, 돈을 바쳐준다면 흐뭇할 것입니다.
그러나 영(신)에게 지폐 쪼가리가 무의미 하다는
것은 상식입니다. 허구는 상식을 멸시합니다
그러므로 그런 종교의 신은 인간 에고의 욕망을
하느님에게 투영하여 만들어 낸 우상일 뿐입니다.
고대인의 미개한 의식이 만들어낸 신이요.
종교적 독재자들이 조작해 낸 교리요,
신을 오해한 종교적인 믿음일 뿐입니다.
누구라도 객관적으로 냉철하게 바라볼 수 있다면
삼척동자라도 알 수 있는 기본적인 이치이건만
종교나 교리, 지속적인 세뇌에 물들어 버리면
그때부터는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이단, 사이비에 빠진 환자들처럼 말도 안통하고
앞 뒤 꽉 막힌 고집만 쎈, 어리석은자가 되어
독재자를 숭상[崇尙]하는 북한주민들처럼 됩니다.
그러나 깨어나는 시대, 다가오는 새시대에는
더 이상 위선과 거짓은 설 자리가 없을 것입니다.
아바이 수령을 찬양하는
북한 유치원생들의 동영상을 본 적이 있나요?
그 작위적이고 인위적인 몸짓, 숭배,
획일적인 찬양 구호와 몸짓을 보면
"어쩌다가 저렇게 망가졌지? 세뇌가 무섭군" 하듯
아바이 우상(하느님)을 위해서라면 가족도 이용하는
맹신도들 역시, 선악의 기본적인 사실 관계조차
제대로 인식할 수가 없게 되고 맙니다.
어느날 제게 보여진 한 장면 입니다.
예배당에 모여 있는 어린아이들에게
■"너희들은 누구니?" 고 질문했습니다.
평소에 그 예배딩에는 아이, 청년. 어른,
어르신 신도들로 다양했는데
이상하게도 영으로 보는 그 예배당에는
어린 아이들만 잔뜩 모여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상하기도 하고 궁금해서 물었습니다.
아이들은 모두 입을 모아
■"우리들은 실향민이예요"
■고향을 잃어버렸다고?
저는 그 어린 영혼들의 대답이
참으로 정직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허상의 하나님, 독재자인 우상을 섬기느라
정작 자신이 누구인지 잃어버린 영혼들,
자신이 누구인지를 모르니, 당연하게도
다시 돌아가야 할 집(본향)도 잃어버렸으니
영혼들이 스스로 실향민이라고 대답한 것입니다.
"신은 자기 자신에 대한
우리의 믿음도 필요하지 않다."고 한
파나슈 데사이의 깨달음의 말은 진실합니다.
※ 완전하신 신이 사람에게 나를 믿으라고
강요하거나 구걸할 리가 있겠니까? 그것은
■신이 아니라 ■육신이자 에고일 뿐입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당신 자신이 빛이라는 것을 알기만 하면
당신은 어떤 상황 속에서도
내면의 평화를 지켜낼 수 있다.
우리는 자신의 선택보다
나를 바라보는 다른 사람들의 눈을
더욱 우선시하고 있다.
나는 나를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눈'을 살고 있다.
■나 자신을 헐값에 팔아버리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개인적인 에너지 주파수가 확장되면
우리의 참자아와 일치하지 않는 것들을
알아차리고 경험하기 시작한다.
■견성. 거듭남, 깨어남의 경험은
■바깥으로 쏠렸던 초점을
■완전히 내면으로 쏠리게 하고 타인이나
■종교나 세상으로부터는 더 이상 기쁨이나
■ 사랑, 소속감을 기대하지 않게 된다.
우리의 행복은 더 이상
다른 사람들의 인정에 근거하지 않게 된다.
살면서 우리가 경험하는 것들은
아무리 고통스러운 경험이더라도
결코 낭비가 아니다.
당시에는 모르더라도 언젠가는
그것을 깨달을 날이 오게 된다.
당신의 참자아를 깨닫고 드러내는 일은
당신의 영혼과 일치와 조화를 이루고
살아가기 위한 과정이며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당신의 모든 것을 당신 자신이
■받아들이고 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당신이 무슨 짓을 저질렀든
당신은 바로 지금의 당신 그대로
신의 사랑을 받고 있다.
지금 여기에서, 이 순간에도...
■ 외부의 그 무엇도,
■ 당신이 어떤 것을 가졌다고 해도
■그것이 당신의 가치나 미래를 보장해 주지 않는다.
■당신의 가치를 보장해 주는 것은
■당신의 존재 자체이며 당신의 존재 자체보다
당신을 더 가치 있거나 더 좋게
만들어 줄 수 있는 것은 없다.
(※ 왕자나 공주는 존재 자체로 소중합니다.
자신이 왕자임을 깨달은 자는 종교눈치를 안봅니다.
무엇을 믿거나... 바치거나... 한다고... 해서
그것 때문에 소중해 지는 게 아닌 이치와 같습니다)
당신의 존재는그 자체로 이미 신성의 펼쳐짐이요
그것으로 충분하다. 당신은 이미 충분하다.
존재만으로 이미 충분한 당신 -파나슈 데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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