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모습 이대로 나 자신을
내가 인정해주며 받아들일 때,
그때 비로소
진정한 의미의 내려놓음이 시작됩니다.
내려놓을 때 비로소
한 시도 쉬지않고 늘 주절대면서
쉴새없이 과거와 미래를 오가는
마음과 생각이 잠잠해지고
고요와 침묵이 깃들게 됩니다.
짙은 먹구름 사이로 한줄기 태양이 비추듯
지금, 여기, 현존,이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그때 비로소
에고의 쉼없는 불안과 갈증이 끊어지고
각양 비교와 시기, 질투, 부러움과
그것을 뒤따르는 자책감과 죄책감,
자괴감에서 풀려나게 됩니다.
그때 비로소 애쓰고 힘쓰는
에고의 고집과 발버둥이 멈춥니다.
애쓰거나 저항하며 발버둥치는 건
에고의 두려움이요, 에고의 본질입니다.
그제서야 비로소 자유로운 영(성령)이
내 안에서 깨어나 활동하기 시작합니다.
그때 비로소 모든 강박이 끊어지며
이래야만 했었다. 저랬으면 좋을 텐데...
이래야만 한다. 저래야만 한다...거나
반드시 무엇 무엇을 해야만 한다.는 모든
당위가 끊어지면서 나 자신이나 환경에
구애받지 않는 참된 행복이 찾아옵니다.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보게 되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때 비로소 삶은 자연스러운 것이 됩니다.
인위적이고, 자연스럽지 않은 모든 집착들과
에고의 저항과 고집이 힘을 잃기 시작합니다.
무거운 갑옷처럼 덕지덕지~ 치렁치렁~ 머리와
어깨에 짐지고 다니는 얽매이기쉬운 것들,
ㅡ체면, 자존심, 허위의식, 허영심, 명예욕 등,
남의 눈치따위는 미련없이 벗어 던지게 됩니다.
뿐 아니라, 내 돈 바쳐가면서 부역하고
부역하면서 눈치까지 보고 비위맞춰야하는,
가치없는 종교의 족쇄에서 풀려나게 됩니다.
그저 단순히 자기 자신이 되십시오.
그저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십시오.
그것이 그대 안의 신성으로 사는 것이며
참으로 자신을 구원하는 길입니다.
남의 시선에 휘둘리며 장단맞추지 말고
그저 자신이 되는 기쁨을 누리십시오.
에고로 살아가면 살아갈 수록 삶은 힘들어지고,
지치고 어렵지만, 영으로(참나=나)로 살면
살수록, 즐겁고 자유로운 삶으로 변합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무겁지 않고 가볍습니다.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마11:29~)
존재자체로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그런 자유가 주는 충만함은 온 세상이
그대로 다 나와 하나임을느끼게 합니다.
나 자신이 된다는 것은
어린 아이처럼 되는 것입니다.
어린 아이는 자신의 외모나 성격이
왜 그렇게 생겼는지 고민하지 않습니다.
남의 달란트가(재능. 타고난 능력)
무엇인지 상관하지 않습니다.
아이는 그 모습 그대로
자기 자신을 받아들이며 자유롭습니다.
뛰어놀고 경험하기가 바쁨니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마태복음 18:3)
어린 아이처럼 된다는 것은
당신의 원래 본성(본래면목)
참된 자기 자신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어린아이는 단순합니다. 자유롭습니다.
체면이나 염치도 눈치도 없습니다.
그저 자신으로 열심히 살아갈 뿐입니다.
내려놓음은 인위적인 것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스스로 아무것도 강요하지 않습니다.
삶이 물 흐르듯 자연스럽습니다.
내가 삶을 무겁게 질질 끌고가는 게 아니라
삶이 나를 이끌어가도록 하는 것입니다.
내안(참나)의 영의 흐름에 삶을 내맡기게 됩니다.
놀고 즐기는 자세로 삶을 살아가십시오.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는 믿음을 유지하십시오.
진리를 탐구하십시오. 영(신)은 자유로우며
참된 영성 역시 자유롭습니다. 그러나
■ 무엇에 휘둘리게 된다면 그것은 가짜이며
에고의 작용이며, 에고의 신이자, 에고의 삶입니다.
에고는 강요, 강권, 강제가 특징입니다.
에고의 종교는 신의 이름으로 비교,강요하며
억압합니다. 차별하고 농락하며 추동합니다.
※추동하다 [推動--]
(사람이 다른 사람을)일의 추진을 위해
고무하고 격려하다.
모든 것을 내려놓을 때 그때 비로소
자기 내면에 마르지 않는 생수인
진리의 샘이 있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내면이 아닌 외부에서, = 종교단체나
군중속에서 군중심리에 휩쓸리며 하나님
=신을 찾으려는 시도가 끊어지게 됩니다.
내면이 아닌 밖에서 평화나 사랑이나
행복이나, 모든 좋은 것들을 구하는 것이
헛된 노고임을 절실히 깨닫게 됩니다.
아둥바둥 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언제나 고요와 잠잠함을 택하십시오.
가난하면 가난한대로,
못 생겼으면 못 생긴대로,
성질이 더러우면 더러운대로
부끄러우면 부끄러운 대로
있는 그대로의 그대 자신을
받아들이고 수용하십시오.
자아(에고)를 내려놓고 편히 쉬십시오.
그때, 신성이 움직이기 시작할 것입니다.
신성은 평화와 고요함, 침착함 속에서
드러납니다. 내려놓음 속에서 역사합니다.
모든 죄에서 돌이킬 마음만 확고하다면,
삶의 순간 순간마다,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는다면ㅡ즉
■사랑과 양심과 의로움을 선택한다면,
당신이 저지른 지난 일에 대해
당신이 당신 자신을 심판하지 않듯,
신도! 그 누구도! 당신을 정죄하지 않습니다.
당신이 스스로를 용서한 것은 바로
신이 당신을 용서한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결자해지 [結者解之] 입니다
"맺은 사람이 풀어야 한다는 뜻으로,
저지른 일은 스스로 해결해야 함"
당신 안에서 얽혔던 죄와 업의 카르마는
그런식으로 당신안에서 녹고 풀어지게 됩니다.
ㅡ예수 그리스도의 향기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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