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의 영역에 들어가는 것을
보장해주는 공식은 아무것도 없다.
그 접근법은 행위의 문제가 아니라
존재의 문제이다.
(어떤 종교를 가졌느냐?가 중요한 것도 아니고
어떤 믿음을 가졌느냐? 가 중요한 것이 아니며
율법을 지키는 행위나 주일성수나
십일조를 내는 따위의 종교적인 행위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종교적 행위로 보면 바리새인이 최고입니다.
누가 바리새인을 따라 갈 수 있겠습니까?
바리새인은 이레(7일)에 두번씩 금식하고
안식일을 지켰고 십일조를 드리면서
모든 율법을 다 지켜 행했음에도 멸망을
선고받았을 뿐입니다.
그 종교적 행위는 종교의 핵심(사랑)이 빠진
겉치레식 종교생활이었고 위선이었습니다.
그들의 종교활동은
탐욕과 명예욕과 이기심의 발로일 뿐,
■그들과 =우리의 종교적 행위는
지금도 여전히 ■똑같이 무의미할 수 있습니다.
다수의 기독교인들은
전도, 영혼구원이라는 미명을 앞세워
오만에 찌든 배타적 민폐까지 끼칩니다.
중요한 것은 오직 "그 사람이 어떤 존재인가?"
하는 ■존재의 문제가
더 핵심적인 변수가 된다는 의미입니다.)
영의 가장 멋진 현현(顯現 나타남)인
■ 계시와 ■ 깨우침과 ■창의성은
대부분 꿈과 명상을 통해 일어난다.
(신학이나 설교를 통한 교육은 단지 에고의
세뇌작용일 뿐, 영의 현현과는 거리가 멀다)
영의 현현은
종교적 의식이나 활동이 아닌,
고요함. 잠잠함. 명상. 몽상같은
비활동성을 통하여 일어난다.
분주하고 산만한 것,
애쓰고 힘쓰는 모든 잡다한 활동,
에고의 마음, 이성적인 마음을 다
내려놓을 때 영의 현현이 일어난다.
남성적이고 공격적인
에고 편향적인 접근은 소용이 없다.
■능력이나 , 뭔가를 ■얻기 위해,
뭔가 신비한 영적 비밀을 캐내기 위해,
뭔가 특별해지고 싶은 마음으로,
영(신)에 닿으려하는 이기적인 접근법은
강도질과 같다. 그렇게 되면
영계에서는 주거침입 경고가 울리고,
전송시스템은 닫혀버린다.
(이럴 경우 어두움의 영들이,
광명한 천사나 예수님, 하나님처럼 행세하면서
각종 응답이나 은사로 역사한다)
우리는 자신보다 더 위대한 지혜와
더 고귀한 지성의 원천을 인정하고
경외하는 마음으로 영에 접근해야 한다.
그리고 나서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리며,
주어진 것에 감사하자.
영은
불확실성과 예측 불가능함과
자유에서 번성한다.(꽃이 핀다)
영은 삶에 열려있고 자유로우며
무한하고 끝없는 다양성에 열려있다.
영과의 효과적인 상호작용을
가장 확실하게 파괴시키는 방법은
(깨달음의 방법, 죄사함의 비법, 교적부등재,
세뇌 교육, 교리문답. 은사 받는 방법 등등)
진입과정에 특별하고 결정적인 형태를
부여함으로써 그것을 구체화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영과는 단절되어 그저 규례와
형식과 겉껍질만 남은, 바리새인의 종교생활,
즉 에고의 종교-취미생활로- 종교적 에고만
강화하면서 단체로 눈 먼 소경이 됩니다.)
이는 고대종교로부터 계속 되풀이 되어 온
저주이자, 우리시대의 저주이다.
구체화란 에고가 가장 싫어하는
불확실성을 감소하려는 시도이다. 그러나
뭔가를 교리화하고 구체화하려 할 때,
우리는 신(영)의 범위를 좁히고 제한한다.
무한한 영으로부터 문을 닫아
영원한 생명으로부터 분리한다.
그것은 영과 생명이 펼쳐지는
방식을 지지하기를 멈춘다.
(영을 교리와 형식으로 지어진 구조물의
깊은 지하감옥에 감금시키게 될 뿐이다)
섬세한 주의가 결핍된 문화에서
우리는 분명한 것을 원하고,
또 그것을 지금 당장 원한다.
그래서 사물에서 생명을 쥐어짜는
접근법에 쉽게 넘어간다.
알다시피 생명을 쥐어짜면 생명은
사라져버린다. 그런 방법에
어쩔 수 없이 실망하게 될 때
우리는 더 큰 그다음 그림으로 옮겨간다.
영(한 마음)과 관련하여
구체화는 하나의 덫이다.
(이런 덫이 여기저기에 길과 진리로 위장되어 있고,
한번 빠져들면 쉽게 빠져나올 수 없는 조직으로~
집단 종교로~ 웅덩이로, 늪으로 포진해있다.)
■ 영에 닿는 길이 공식화되면
문은 닫혀버린다.
하지만 비어있음과 가득함의 상호작용과
그 마음과 생각이 항상 열려있는,
허용하기 안에 내재하는 행동을
이해하는 사람에게는
영(신. 한마음)으로 가는 길이 늘 열려있다.
ㅡ원 마인드/래리 도시ㅡ중에서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미스테리한 목격담, 어둠의 존재들
"비오는 날 수원 연화장 가는 길에서"
"계곡에서 죽은 혼을 직접 실어본"
만신 이야기/한편의 반전 드라마같네요.
"무당 한달차에 경험한 실화"
/사람의 명운=생명줄을 더 늘인 사연
'- 글 - > 좋은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꿈의 영감 (0) | 2022.05.10 |
---|---|
믿음과 불신 사이에서 (0) | 2022.05.08 |
세상에서 가장 귀한 이야기 (0) | 2022.05.06 |
살아 계실때 (0) | 2022.05.06 |
왜 악인을 알아보지 못할까? (0) | 2022.05.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