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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 겸손

에덴촌 2022. 3. 31. 18:30

거짓 겸손

내가 살던 마을에는

성자같은 매우 유명한 사람이 살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가 매우 겸손하다고 말하곤 했다.

드디어 그가 나를 만나러 왔다.

 

그는 내 발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저는 당신 발바닥의 티끌에 불과합니다.”

 

난 그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은 뭔가 다른 걸 말하고 있었다.

(나는 이토록 겸손한 사람이외다)

 

그래서 내가 말했다.

“나는 당신이

절대적으로 옳다는 걸 알 수 있소.

당신은 정말로

내 발바닥의 티끌에 불과하오!”

 

그러자 그가 정색을 하며

 “뭐. 라. 고. 요 ?”

그는 몹시 화를 냈다.

 

내가 말했다.

“하지만 나는 그저

당신 말에 동의하고 있는 것뿐이오!

내 자신이 말을 지어낸 건 없소!

당신이 한 말이고 나는 동의했을 뿐인데

왜 짜증을 내는 것이오?”

내가 말을 이어갔다.

“이제 눈을 감고 조용히 앉아서 핵심을 보시오!

이것은 당신의 에고가

또 다른 방식으로 자아를 만족시키는 것이오.

에고는 존재하지만, 이제 그것은

위아래가 바뀌었소. 물구나무를 서 있소.

하지만 역시 똑같은 에고요.

잘난 척 하는 에고가

이제는 겸손한 척을 하고 있소.”

ㅡ사랑의 연금술ㅡ중에서

 

거짓 겸손, 꾸며진 겸손이나

믿음이 좋은 척,

누구보다 헌신하고 충성하는 척,

사랑이 많은 당회장인척 하는 것은

바리새인들의 주특기입니다.

에고를 꾸미고 화장하는 것입니다.

에고의 만족을 위한 것은 

무덤에 회칠하는 것과 같습니다.

 

겉을 꾸미고 치장하는 것은

자신을 속이는 것이고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가식적인 겸손일 뿐,

참된 겸손이 아닙니다.

겸손한 사람으로 보여져서 남에게

인정받기 위한 것이고, 그럼으로써

칭찬과 영광을 받기 위한 것입니다.

 

대부분의 신도들의 신앙생활은

성경지식을 더 쌓거나 훌륭한 믿음인냥

남들에게 인정받기 위한 것입니다.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는 신앙,

즉, 에고를 꾸미는  신앙생활입니다.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지만 회칠한 무덤은

진리, 생명. 영과는 정반대의 것입니다.

 

자기 생각과 마음을 잠잠히 하여

자신을 관찰하는 주시자 관점을

가질 때 비로소

더 깊은 시각을 가질 수 있으며 

마음이 지어내는

거짓과 모순들을 통찰할 수 있게 됩니다.

통찰한다는 것은 깨닫는 것이며

캄캄한 방에 등불을 켜는 것입니다.

통찰의 빛, 깨달음의 빛이 켜진다는 것은

내면의 어둠을 몰아낸다는 것입니다.

ㅡㅡㅡㅡㅡㅡㅡㅡ

지난주 보았던 교계 뉴스

 

"조용기 '지옥갔다'에 100만원" 글 삭제된 이유는? 

https://news.v.daum.net/v/20220108094428231 

 

교인들에게 저주성 발언한 목사

"권총 맞고 죽기 싫으면 주의종에게 잘해야" - https://www.newsnjoy.or.kr/news/articleView.html?idxno=303882

 

아들 물려주려고?..신도 없는 '서류 교회' - https://news.v.daum.net/v/20220111202815642

 

"어느 목사님의 이중생활"ㅡ Pd수첩

https://youtu.be/1wt6QBaEof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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