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럴까 저럴까 망설이거나
방황하는 것은
길을 잃고 헤매는 것입니다.
누구나 길을 잃고 헤매는
때가 있습니다.
진로나 직장을 선택하는 길이나
연인이나 배우자를 선택하는 길은
중요한 분깃점이 되는 시점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안주하지 못한
망설임과 혼란의 시기이기도 합니다.
종교생활도 습관적으로 다니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단순한 행동의 무의식적인
반복에 지나지 않는 것이기에
어떤 발전을 기대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세뇌된 무지와 아집을
고정시키고 고착화시켜 영적상태가
오히려 더 나빠지게 될 뿐입니다.
길을 잃고 헤매는 것이
나쁜 것이 아닙니다.
누구에게나 꼭 필요한 과정이며
이런 과정을 통해 비로소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 될 수 있습니다.
고통. 어둠, 방황. 이별은
이것만으로는 불행으로 보이지만
한 단계 더 성숙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꼭 필요한 과정입니다.
깨어지고 부서지는 과정을 통해
반강제적으로 자신을 성찰하게 되며
한템포 쉬어가는 계기가 됩니다.
마구 열심히 달리기만 하는 인생은
어리석고 덧없는 것입니다.
그런 것에 비해
고통. 어둠. 방황은
잠시 멈추게 하고
자신을 돌아보게 합니다.
이런 것들은 결코 유쾌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우르르 몰려다니는 종교생활이나
마시고 떠들고 웃는 시간보다
더 의미깊고 내실있는 시간입니다.
이럴 때 흘리는 눈물은
깊은 사유는 삿되고 속된 것들과
욕심에 휘둘리는 것들과 막나가는
잡스러운 것들을 씻어내는 정화작업이 됩니다.
또, 이별은 슬프고 아프지만
심각하게 잘못된 관계는
이별이 있어야만
더 나은 만남을 가질 수 있으며
더 좋은 관계를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아픔이나 슬픔, 이별을
무조건 거부하거나 두려워해서는 안됩니다.
그러면 더 이상 발전할 수 없게 됩니다.
정화되지 않은 사람이...
탐욕이 절제되지 않은 사람이...
자기 욕심과 기분, 종교적 성취욕을 따라
마구 내달리기만 하는 삶을 산다면
그 결과가 어떻겠습니까?
그 인생의 그림이 어떻겠습니까?
모든 것이 한편의 영화필름처럼 펼쳐질 때
그는 부끄러운 열매들을 보게 되며.
수치스러운 졸작을 대면할 것입니다.
그런 것을 방지하기 위해
기쁨의 오르막 길과 슬픔의 깊은 계곡이
우리 인생길에 펼쳐져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통은 감사한 일이고
성찰과 변화로 자신을 업그레이드한다면
고통이 아니라 은혜임을 깨닫게 됩니다.
종교란 어떤 특정한 곳이나 한 곳에만
집착한다면 종교가 아편이 됩니다.
종교뽕이 없으면 불안하고 공포스럽다가
종교뽕을 맞으면 또 다시 천지분간도,
선악분별도 못하는 종교좀비가 됩니다.
무조건 충성. 무조건 교육, 세뇌와.
무조건 전도(세력결집)를 외치는
이성없는 짐승이나
북한 주민들처럼 되어버립니다.
참된 종교란 자기 성찰입니다.
누구나 빈 맘, 빈 몸이 될 수 있다면
내 안에 계신 하나님,
내게 오직 하나뿐인 그 신이
나를 이끌어가시는 길, 그 길이
참되고 영원한 종교입니다.
"교회, 습관적으로 다니지 말라.
수십년 다녀도 아무 소용없다"
ㅡ예수 그리스도의 향기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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