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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그리고 사랑이 아닌 것

에덴촌 2022. 11. 1. 18:25

자유를 찾아 방랑하는 성자ㅡ(2)

https://youtu.be/Awj1ZkWSm4E 

"사랑/고독/믿음/진리/비움"

 

그대가 사랑을 갖고 있지 않다면

■무슨 일을 해도 죽은 인간일 뿐이다.

(어떤 수도나 고행,  종교생활을 해도 

어떤 정의로운 일을 한다고 해도)

그리고 사랑의 상태에 있지않은

마음은 전혀 종교적인 마음이 아니다.

 

사랑은 절대로 배양될 수도 없고

훈련될 수도 없으며

초래될 수도 없다. 그러나 사랑은

숨을 쉬는 것처럼 자연스러워야 한다.

 

■사랑의 행동은 동기를 갖고 있지않다.

사랑이 아닌 행동에는

나름의 동기가 숨어있다.

 

■ 야심과 ■질투 ■시기심

■특별한 사람이 되려는 욕망,

■ 성공하려는 욕구,

■이것들은 모두 ■마음에 속해 있다.

이것들을 그대의 마음을 채우고서

어찌 그대가 사랑을 할 수 있겠는가!

지금 연기(냄새)가 나고 있는데

어찌 여기 있는 불(사랑)이

순수할 수 있겠는가!

(Ps/ 하나님=참나의 사랑은

조건이나 이유를 내세우거나 따지지 않으며

계산하여 사랑하는 사랑이 아닙니다.

조건과 이유를 내세우며 사랑하는 것은

'내 편이니까, 내게 유익이 되니까,'

사랑하는 =마음이 왜곡한 가짜 사랑입니다.

조건과 이유, 계산이 들어간 사랑은, 부모다운

참된 사랑이 아니라 간교한 가스라이팅이고

가식과 체면, 허위의식과 욕심일 뿐입니다. 이는

존재 그 자체를 순수하게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숨은 동기와 목적, 이기심, 탕욕이 섞인

순수하지 못한, 이용하는, 것일 뿐입니다.

참사랑의 본질을 정확히 통찰한다면

부모자식, 연인, 친구간에 벌어지고 있는

가스라이팅을 사랑이라고 믿는 일이 줄어들며

하나님과 구원, 축복의 명목으로 자행되는 

종교적 가스라이팅까지 꿰뚫어 보게됩니다 )

■ 사랑은 마음의 소산이 아니다.

 

그리고 사랑은 우리의 문제에 대해

단 하나의 대답이다.

질투, 부러움, 소유욕, 지배욕,

■이 모든 것이 끝나야만 

우리 사랑이(나의 사랑이)

어떤 상태인가를 알게 될 것이다.

 

무언가를 가지고 있는한

우리는 결코 사랑을 알지 못할 것이다.

(십일조에 집착하고, 교리에 집착하고,

극우나 극좌, 혹은 좌우 이념에 집착하고

성공이나 자기 종교조직이나 세도에 집착하고

자기 소유, 자기 집단에 집착하는 것은

바리새인의 사랑이며, 그들의 사랑은 마음의

욕심일뿐, 사랑이 아닌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마음에 속한 것들(질투. 소유욕. 지배욕)을

■모두 쓸어버려서

그대 가슴이 깨끗해졌을 때

■비로소 사랑(=하나님)이 들어선다.

ㅡㅡ

진리는 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처음부터 배타적인 것은

■나중에도 배타적인 것으로 끝난다.

■그러므로 어떤 종교에 몰입된 사람은

배타성 속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절대로 진리를 알 수 없다.

그의 수단은 배타적이다.

그리고 그의 수단은 목적이다.

수단은 목적과 분리되지 않는다.

만약 수단이 배타적이라면

그 목적도 배타적일 수 밖에 없다.

 

진리는 추상적인 것도 아니며

최종적인 것도 아니다.

진리는 살아있는  것이며

영원히 창조 속에 있는 것이다.

진리는 이상한 것이다.

그대는  진리를 그대의 생각이라는 

그물로는 절대 잡을 수 없다.

진리는 인격적인 것이 아니며

어떤 종교나 개인, 어떤 집단과도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이다.

진리는 어떤 사원에서도

어떤 종교조직에서도 발견될 수 없다.

 

무딘 마음, =반복만  계속해대는 

그대의 마음만 가지고 추구될 수도 없고

항상 새롭게 살아서 움직이는 진리를

어떻게 발견할 수 있겠는가?

진리는 그저 드러날 뿐이다.

 

진리를 알려면

마음이 고요하고 자유로와야 한다.

마음의 자유와 고요는 그 관계가

벌이는 사실을 이해했을 때 찾아온다.

모든 투사로부터 자유로울 때

그리고 그때야 시간을 떠난

영원한 것이 찾아온다.

 

진리는  지식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가 진리를 발견할 때까지

우리의 고민과 슬픔이 빠져나갈 출구는 없다.

그 해결책은 마음이 잔잔할 때 

직접적으로 진리를 경험하는 것이다.

 

충분하고 완벽하게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은, 아무런 믿음도 필요하지 않다.

그는 창조적이다.

그는 진정으로 창조적이며

그 창조성은 어떤 믿음에 대한

반작용의 소산이 결코 아니다.

 

■ 무언가를 믿으려는 욕망은

반드시 이해를 거쳐서 소멸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깨달음을 가져오지 않기  때문이다.

■ 믿는다는 것은 종교적이지 못하다.

어떤 신념, 마음이 창조해 낸

어떤 것에 대한 믿음을 갖는다는 것은 

■참된 것을 맞이할 문을 닫아두는 것이다.

 

의학적 지식이 우리 몸의 고통을

덜어주는데 도움을 주듯이

믿음은 우리 마음의 고통을 

덜어주는데 도움이 된다.

바로 이것 때문에 우리는 믿음의

실체에 대해 완벽하게 알지 못하면서,

 구체적으로 입증하지도 못하면서,

우리가 가진 믿음을 잊어버릴까

근심에 잠겨 안절부절 못하고 있다.

믿음은

참된 실체를 가리고 있는 장애물이다.

 

-위 유튜브 영상에서 발췌한 글입니다.

영상으로 직접 들으시면 더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