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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홀연히

에덴촌 2022. 10. 19. 18:39

어느날 홀연히 나타난 어떤 손이

나의 상태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그 손은

사실을 드러내 보여주었다는 것을

내  영혼이 부인할래야  부인할 수 없었다.

부인할 수 없었기에 할 말이 없었다.

 

나의 충격은 이루 말로 다 할수 없었다.

그 후, 말을 잃고 실어증에 걸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대 중반의

나의 일상과 회사생활은 계속되었다.

 

입이 열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단 한마디 변명조차 무의미했다.

나는 완전히 침묵했다.

심지어 나는, 그 완전한 침묵상태가 

명상이라는 것조차 몰랐었다.

 나는 타종교에 대해서는 완전히 무지한,

 철저한 외골수 기독교인이었던 까닭이다.

 

살아있는 실체적  진리는

배움에서 나오지 않는다.

복잡한 생각에서 나오지도 않는다.

종교에서 나오는 것도 아니며

교리나 이념체계에서 오는 것도  아니다.

무엇을 얻어가려는 데서 나오지 않으며

인간-에고에서 나오는 것도 아니다.

인간 에고는  그저 상상하고 추론할 뿐이다.

두려움을 없애기 위해 

절대자나 강한 신이나 사람에게

무턱대고 쉽게 의존하려는 것이 에고다.

 

에고는 보이지 않는 실상에 대해서

상상으로 조작하거나 추론하며 왜곡한다.

그런 에고의 교리나 설교들은 단지

허망한 추론이며 지적 장난에 불과하다.

전해오는 이야기나 전통에 기반한  믿음도,

종교생활도, 에고의 영역에 속한 것이다.

 

내가 일주일이 넘게 

말을 하지 않고 살았다는 사실을 

나중에서야 자각했을 정도로

난 나도 모르게 무심의 존재가 되었다.

어쩌면 그것은 완전한 자기-비움이었다.

그 잠잠함 속에서, 그 완전한 침묵속에서 

전혀 예상치 못한 찬란한 광휘가 드러났다.

 

진리는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어떤 사람에게서 오는 것도 아니며

종교단체에서 오는 것도 아니다

깨우침에 이르는 진리는 어떤 지식이나,

혹은 외부에서 올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참된 신은 사람 안에 계신 까닭이며

진리는 철저하게 내밀하며 개인적이다.

그만큼 깨달음의 체험은 100인 100색이다.

 

외부에서 오는 것은 교육과 배움이요,

더 많은 정보나 이론, 관념과 주의와 주장을

에고에 입력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은 진리와는 동떨어져 있다. 

진리는 각 존재의

가장 깊고 은밀한 중심에서 드러난다.

내 삶의 현장에서 드러난다. 그것도

내가 사는 집,  마당 한 귀퉁이었다.

새벽의 마당은 한치 앞도 볼 수 없는

하얀 안개로 자욱했다.

 

안개속에서 나는 맞은 편에 서 있는 

어떤 분을 마주하고 서 있었다.

짙은 안개 때문에 누구인지 알 수 없었고

얼굴은 전혀 보이지 않았지만

그분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큰 사랑의 아우라가 느껴졌다.

일찍이 그 어디에서도 느낀 적 없는 사랑,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엄청난 사랑이었다.

나는 문득, 

길 잃은 아이같은 슬픈 심정이 되어 

그분에게 가서 안기고 싶었다.

그러나 그럴 수가 없었던 것은 그 분의

위엄, 그 거룩하심이 나를 얼어붙게 했다.

큰 능력과 지고한 위엄에 짓눌린 나는

감히 한 발자국도 다가갈 수가 없었다.

 

뿐만 아니라  짙은 안개속에서 

거의 잘 보이지도 않는 그 분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차마 그분을, 

눈을 들어 똑바로 쳐다볼 수 조차 없었고

심지어 고개조차 들 수 없을 정도였다.

그 위엄이 어떤지 짐작할 수 있겠는가!

고개를 푹 떨구고 있는 나.  만약

하나님이 계신다면 저런 느낌이리라.

 

내가 이 세상 최고의 왕 앞에 선다고 해도

그보다 더한 어떤 힘 있는 자 앞에 있다해도 

이 같은 경외심을 느끼지는 못할 것이다.

안개속에서 나를 마주하고 서 계신 분,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문득  그분이...

내 코 앞에... 다가오셨다.

 

그때 나는 

"아...!" 외마디 탄성과 함께

넘어질듯 두어걸음 뒤로 휘청거렸다.

그때 내 입에서 나온 단 한마디

"이건 바로 나 자신이잖아!"

 

그렇게 나를 이끄신 분은 참나였다.

그렇지만 그분이 내 안에 계신

하나님이시고 참나라는 사실을 깨닫기까지

무려 30년 가까운 세월이 걸렸을 정도로

기독교적 나의 고정관념은 무지무지 막강했다.

나를 깨우치신 분은  

하늘 저 높이 보좌에 앉아계신 하나님도 아니고

나와 동떨어진 인격신, 전능한 우상신도 아닌,

내 속에 계신 하나님이신 참나였다.

나를 나로 드러내신 분도 참나였다. 

 

육신을 입은 내 육신적 본성은

탐욕 덩어리로, 때로 짐승과 같고 

때로 더러운 똥통과 같을지라도

내 속의 진정한 나자신, 내 본질은 신이었다.

큰 능력과 위엄, 그리고 말로 다 할 수없는

사랑과 공의의 신이었고 신성이었다.

상상속에서만 믿어왔던 그  하나님이었다.

 

숭배와 제사, 무지와 미몽에 휩쌓인

많은 종교인들과 많은 사람들이 

이 놀라운 비밀을 깨닫기 시작했다.

깨닫기 전에는 나는 기독교만 구원이라면서

집단-광기나 부리는 민폐 종교인이었는데,

하나님께 충성한다는 미명아래 삯꾼에게 

나의 돈과 충성을 다 바치는 노예였는데

깨닫고 보니 삯꾼들은 자신도 알지 못하는 것에

짐짓 아는체 하며, 영혼들을 속이는 자들일 뿐!

 

아래 유튜브에 사람의 시신을 가지고 

장난치는 악마, 못된 악어들처럼

https://youtu.be/eQw0KN4Y8qY

 

그들은 시신이 아닌 그보다 더한 사람의

영혼을 가지고 구원팔이, 하나님팔이, 

축복팔이, 직분팔이로 장사하는 자들이며,

영상 속 악어들보다 더 악한 늑대들이다.

 

그리고 종교를 초월하여 참된 진리를

깨달은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가 깨우친 사람인지 아닌지가

그 사람의 몇마디 말만으로도

자명하게  드러나 보였다.

 

이제 많은 사람들이 광범위하게 깨우치고 있다.

그리하여 독재자이자 우상 하나님을 믿는

무지와 미몽에서, 깨어나고 있다.

자기 안에 계신 신성, 참나  하나님을

깨닫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다.

우상 하나님, 외부의 하나님.

에고가 만들어 낸 그럴듯한 신, 

우상 하나님을 숭배하고,  믿고!

빌고,  바치고 섬기는 시대는

점차 종말을 고하게 될 것이다.

 

높은 보좌에 앉아 찬양과 경배받기를

원하는 신의 모습을 한번 보시라. 

https://youtu.be/mUrcgqnW3ag 

위 영상 속에  나오는 ■교주와 

■에고의 우상 하나님이 무엇이 다른가?

깨우친 사람들은 누구나  무수한  종교-노예들,

종교-바보들의 무의식적 행진을 분별하게 된다.

 

그  크신 사랑과 엄중한 공의 앞에

나는 반쯤  넋이 나간상태였고

꿈인지 생시인지 모를 장면은 끝이 났다.

 

그것은 에고와 참나의 마주봄이었다.

육에 속한 사람과 영에 속한 사람의 대면이였다.

신성한 속사람과 후패한 겉사람과의 대면이었다.

※후패하다 [朽敗--]

(무엇이)썩어서 문드러져 못 쓰게 되다

 

하나님은 각 사람 안에 있는 비밀이다.

신은 각 사람 안에 계신 지혜이다.

하나님의 음성이 들릴때마다 

나는 큰 감동속에서 울었지만

정녕 그 신이, 그 음성이 

성서 속의 그 하나님이 아니라

나 자신의 신성한 상위자아, 진짜 나,

진아,  참나일 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오직 교리와 인간 에고가 말하는  

잘못된  고정관념에 철두철미하게 세뇌되어

요지부통, 아집으로 인이 박혀있었던 것이다

잘못 입력된 신앙은 편견과 끝없는 분리분쟁과

두려움으로 나를 가두고 있었던 것이었다.

 

진리는 각 사람안에 있다.

진리는 저마다 다른 개성과 빛들로 드러난다.

이  비밀을 참으로 깨닫는 사람들은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하는 참자유를 누리게 되지만 그렇지 않다면

사람과 조직. 종교나 교리의 종이 된다.

무언가 불안하고 두렵기 때문에

종교조직과 삯꾼의 종이 되는 넓은 길,

쉬운 길을 택하고 거기 종노릇하게 된다.

종노릇하는 자들에게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들에게는 군중심리와 의존심,

막연한 추측과 상상, 기대만 있다.

에고의 믿음은 모래성같아서

에고의 본질상 허망한 것이다. 진리의 영이

진실을 깨우치는 즉시, 무너지는 모래성이다

 

 신은 오직 그 사람 안에 있다.

누구든 겉으로 분주한 모든 것을

내려놓고 자기 내면에만 집중할 수 있다면

지혜와 진리는 스스로 드러난다.

 

그때 참나는

장엄한 신성을 드러낸다. 불교에서는

이를 공적영지(空寂靈知)라고  한다.

※텅비어 고요한 가운데 드러나는

신령스러운 지혜/ 혹은 /알아차림이다.

잠잠하고 고요한 가운데 일어나는

알아차림은 깨우침이요, 견성이다.

그럴때 사람은 자신의 본성인

불멸의 신성, 영원한 신성을 깨닫게 된다.

 

명상은 가장 깊은 기도의 한 형태이다.

잠잠함은 가장 겸손하고 가장 진실하며

원초적이고 근원적인 기도이기도 하다.

생각과 생각 사이를 오가는 시끄러운 기도,

개구리같이 와글대는 무수한 중언부언이 

다 부질없어도 오직 깊은 고요속의 명상은

신과 만나는 절대고요의 문이요 비밀의 문이다. 

ㅡ예수 그리스도의 향기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