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words)이 결코 진리를 드러내지 못한다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뜻(의미)을 죽이는 것은 바로 말이다
(It is the word that killeth).’라고 하셨는데,
이는 말이 진리를 가리고 있음을 뜻하고 있단다.
물론 우리는 진리에 이성적으로 접근할 수 있단다.
그러나 이성(reason)은,
우리가 침묵의 문(the door of Silence)에
들어가기 전에는 반드시 멈춰야만 하지.
그리고 침묵의 문이
바로 진리(영으)로 들어서는 입구인 것이다.
소위 성서라 부르는 거룩한 말씀은
사람의 손에 의해 씌어진 것이다.
이것이 가장 먼저 고려되야 할 사항이지.
신약성서는 예수께서 십자가형을 당하고 나서,
150년 뒤에나 씌어졌지. 십자가형은 그 당시에
사람을 죽이는 수단이었고 말이야.
만약 누군가가 사람을 죽인다면
너는 그를 살인자를 부르지.
그런데 만약 니가 분노하여
그 살인자를 죽이게 되면
너도 살인자가 되는 것이 아니겠니?
악을 악으로 이기려 힌다면
너도 악인이 된다는 의미다.
오늘날, 신도들이 자신이 믿는 방식대로
신을 믿지 않는다고 해서 다른 종교인들을
죽임으로써 신에게 봉사를 한다고 생각한다.
대량 학살은 바로 이런 믿음의 결과로써
오늘날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어.
사람들의 동의 없이 살인한다면
교수형에 처해지겠지만,
교회나 종교의 동의를 받아 살인을 하면
훈장을 받게 되겠지.
그러나 그것은 똑같은 살인(미움)일 뿐이야.
너는 이 사실을 부인할 수 없을 거야.
또한 너는, 신을 대표한다고 자처하는 자들이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들을
죽이라고 내보내는 사람들을 축복하고,
살인을 위해 생산된 무기(신도)들을
축복하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을 거야.
그들은, 나와 당신은,
하나님(알라)의 이름으로
시대에 역행하는 이 야만적인 행위에
어떤 책임도 없다고 말하면서
이 모든 것을 신의 탓(뜻)으로 돌려버리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그것을
성서(a Holy Book)라 부르고 있다.
이 모든 미움과 학살은
바로 너와 나를 가르는
●분리 의식 때문에 일어난단다.
국가와 민족을 나누고, 인종을 나누고,
종교를 나누고, 교리나 믿음을 나누고,
이념이나 사상(ideals)을 나누는
분리 의식 말이야.
교리주의자, 이상주의자(idealist)야 말로
가장 위험한 사람이란다.
왜냐하면 자신의 사역을 수행하고자 한다면
그는 무자비해질 수 밖에 없기 때문이지.
그는 자신에 맞서는 모든 사람들을
(혀와 입의 칼로) 죽이게 된단다.
오늘날 사람들은 다른 것들보다도
자신들의 믿음이나 이념(ideals) 때문에
서로를 더 많이 죽이고 있다네.
자신들의 이념이나 신앙을 지키려고 사람들은
상대를 배척하거나 죽여야만 하는 것이지.
그래서 오늘날 진행되고 있는 대량 학살은,
다른 부류의 사람들보다
교회에 다니며 하나님(=알라)를
자신의 아버지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에 의해
저질러(directed)지고 있는 것이란다.
그들은 진리를
이토록 볼품없이 만들어버렸단다!
그러나 참된 영성이란
모든 것을 감싸 안는 것이야.
(Spirituality is all-inclusive).
만약 네가 누구는 사랑하고 누구는 미워한다면,
(내 교인은 사랑하고 다른 교인은 미워한다면,
내 종교는 사랑하고 다른 종교는 미워한다면)
너는 결코 사랑으로 가득 찬 사람이 될 수 없고,
그렇기 때문에 너는 영적이 될 수도 없는 거야.
그때 너는 모순 속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지.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지:
‘그대의 신을 사랑하고
그대의 이웃을 사랑하라.’
그러나
● 신을 사랑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 자신의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란다.
그런데 왜 우리는
이웃을 사랑하지 않는 것일까?
그건 단순히,
그들이 우리와 다른 이념이나
신앙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지.
다른 문화(code), 다른 종교,
다른 민족이나 국가에 속해 있기 때문이지.
그러므로 우리는 반드시
이념이란 무엇인지, 믿음이란 무엇인지,
민족이나 국가라는 정체성이란 무엇인지,
조직화된 종교란 무엇인지를
이해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모든 것들은
성숙하지 못한 마음들이 만들어낸
산물일 뿐이야. 그렇지 않니?
분별 있는 사람(a man of sense)에게는
이 사실이 너무나도 분명하지.
● 교리(dogma)와 신조(creed)는
● 악하고 편협한 길로서,
우리를 사람의 손으로 지은 건물로 이끌게 된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내면의 성전으로 가는 길을 보여주고 계시지.
그 성전은 사람의 손으로 지은 건물이 아니야.
우리 안에 있는 성전에서 비로소 참된 진리와
생명의 모든 신비가 우리 앞에 펼쳐지게 된단다.
참이 아닌 것들, 즉 거짓된 것들을
우리가 알아보기(discern) 시작할 때,
생명의 모든 신비는
언제나 그랬듯이 차례차례 연속적으로
우리 앞에 펼쳐지게 된단다.
그 의미는 명확하단다:
신에게 이르는 길은
교회나, 성직자를 통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내면에 살아계신 그리스도이신,
하나의 생명으로 녹아들어
그의 의식과 하나가 되는 것만이
유일한 길이라는 것이야.
자신을 믿고 따르라는 자들은
다른 길로 넘어오는 자들이요.
모두 강도이며 도적이란다.
ㅡ그리스도 요가(=의식)ㅡ중에서(펌글)
티벳의 성자를 찾아서ㅡ후속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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