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볼 때 우리는 영화의 내용이
스크린 위에 있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영화의 전체 내용은
뒤쪽에, 즉 영사기 안에 있습니다.
삶 역시 마찬가지 입니다.
사람들과 상황. 외부 환경. 현실은
스크린과 같습니다.
분명 우리들은 스크린과
(스크린=주변 사람들, 나의 현실, 현상황)
얘기하는 것을 좋아하며
아주 능숙하게 잘 합니다.
우리는 자신이 옳다는 것을 스크린에게
납득시키기 위해 애를 씁니다.
우리는 스크린=주변사람들, 현실, 상황이
변하기를 원합니다.
(스크린이 변하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하지만 스크린은
아무것도 할 수가 없습니다.
만일 우리 스크린 위의 어떤 것을
변화시키길 원한다면
변화될 필요가 있는 것은
■ 바로 우리 자신입니다.
그 영화는 우리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가족들, 주변인들, 나의 상황, 현실문제
라는... 비춰지고 보여지는
-이 현실- 스크린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스크린이 비추어내는 영사기의 문제입니다)
우리 자신이 영사기이기 때문입니다.
베다에서는 물질세계를 마야(환영)라고 합니다.
모든 사람은
거울에 비친 당신의 모습입니다.
당신에게 되돌아오는 당신의 생각입니다.
호오포노포노,가장 쉬운 삶의 길ㅡ
-마벨 카츠- 글입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기도할 때는
A-(1) 병을 고쳐달라고 구할 것이 아니라
(2) 건강한 상태가 되기를 구해야 할 것이고
B-(1) 불화와 갈등에서
건져달라고 할 것이 아니라
(2) 조화로운 삶이 되기를 구해야 합니다.
C-(1) 궁핍을 면하게 해달라는 것이 아니라
(2) 풍요로움이 넘쳐나도록 구해야 합니다.
벗어나고 싶은 불만족스러운 상황은
마음에서 떼어내고 아예 생각조차 마십시오"
ㅡ일상의 현실을 바꾸는
무한한 가능성의 발견ㅡ중에서/ 펌글
(1)번 기도와 (2번)기도의 차이점이
무엇일까요? 이 차이점에
응답되는 기도의 비밀이 있습니다.
A-1번 기도는, '나는 병들었다'는
부정적인 스크린에 고정되어 있습니다.
B-불화와 갈등에서 건져달라는 것은
나는 불화와 갈등속에 있으며
조화롭지 못하다는 것을 벌써 먼저
시인하고 고백하고 있는 셈입니다.
C-궁핍을 면하게 해 달라는 기도 역시
나는 궁핍하다는 자기 존재, 정체성을
이미 전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기도는 계속 반복한다고 해도
효과가 거의 없습니다.
오히려 나는 궁핍하다는 자기 정체성을
시인하는 격이 되어
마음으로 시인한 그 궁핍이 지속됩니다.
그에 비해 2번 기도들은 그 마음과 감정에
감사가 밑바닥에 깔려있는 긍정기도입니다.
저 역시 무엇이 궁금했을 때,
감사와 확신을 갖고
단지 몇마디 말로만 기도했습니다. 바로
그날 밤, 궁금증에 대해 즉각 응답을 받았습니다.
부정적인 생각이나 불신은 1도 없었습니다.
그런 기도는 응답받는 시간의 차이만 있을 뿐
반드시 응답을 받습니다.
ㅡ예수 그리스도의 향기ㅡ
'- 글 - > 자유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뇌파와 의식 (0) | 2022.06.04 |
---|---|
정치인의 거짓말 (0) | 2022.05.31 |
목사님과 사모님은 대체 어떻게 만났을까? (0) | 2022.05.19 |
하나님과의 독대 (0) | 2022.05.16 |
좋은 운명을 선택하는 법 (0) | 2022.05.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