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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치안을 맡은 포도청(捕盜廳)(1)

에덴촌 2022. 4. 27. 21:58

서울의 치안을 맡은 포도청(捕盜廳)(1)     예나 이제나 도둑은 근절되지 않는 관계로 그 예방과 체포에 힘쓰게 마련이다. "도둑이야! 도둑 잡아라." 조선시대 서울거리에서 이와 같은 소리가 한밤중의 적막을 깨뜨리면 이 골목 저 골목에서 사람들이 뛰쳐나와 도둑을 잡기 위해 합세하는 것이 상례였다. 이것이 우리의 전래 풍습이었으므로 방범(防犯)에 큰 몫을 했다.   "오늘날에는 경찰과 방범대가 있지만 조선시대에는 서울의 치안이 어떻게 유지되었을까?" "조선초에는 한성부를 위시하여 순군만호부(巡軍萬戶府), 의금부, 병조(兵曹), 군문(軍門), 경수(警守) 등의 부서에서 해당 범법자를 체포, 구금하여 그 죄를 다스렸지." "그 외에도 서울에는 도둑을 잡기 위해 설치한 관아가 있다고 들었는데……" "그렇지, 포도청(捕盜廳)이 빠졌구먼. 그러니까 조선 초 성종 때 도둑을 잡기 위한 포도장(捕盜將)을 경기도와 황해도 두 곳에 임명하여 40여명의 군사를 거느리게 했다가 폐지하곤 했지." "그럼 언제부터 포도청이 정식 관아로 되었을까?" "서울에 좌포도청과 우포도청을 상설하게된 것은 중종 36년(1541)이지."   당시 좌포도청은 현재 종로 3가 단성사 극장 부근에 있었고, 우포도청은 동아일보사 동쪽의 광화문우체국 자리에 있었다.   "성종 때 임시로 설치되었던 포도청이 70년이 지난 중종 때에 와서 정식 관아로 된 이유는 무엇일까?? ?그건 다름아니라 임명된 포도장들이 도둑을 잡는다는 이유로 무고한 백성들을 끌어내어 인권을 유린한 폐단이 있었기에 설치되었다가는 이내 폐지하곤 했지." "그런데 포도청에는 어떤 관원들이 있었을까?" "음, 포도대장 휘하에 포도군관(捕盜軍官), 포도부장(捕盜部長), 그리고 포도군사(捕盜軍士)들이 소속되어 있었지. 그러니까 중종 때 정식 관아로 되었을 때는 좌, 우 포도청에 222명이 있었는데, 조선말 고종 4년에는 286명이 소속되어 있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