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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걸음 한걸음씩

에덴촌 2023. 11. 15. 18:09

아기는 조금씩 성장합니다.

뒤짚기, 기기, 홀로서기, 걷기가

한꺼번에 뚝딱 이루어지지는 않습니다.

우리의 영적 성장도 -임사체험같은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닌 이상, 

-단계  단계 조금씩 성장하게 됩니다.

 

영적 성장은 지식으로 자라는 게 아니라

실제적인 체험과 깨달음으로써 성장합니다.

지식은 다만 머리에 입력되는 내용일 뿐

영적 성장과는 서로 다른 차원, 다른 일 입니다.

지식은 다만 지식일 뿐,  

지식으로 영의 눈이 뜨이거나

영적 감각이 발달하지는 않습니다.

영의 눈과 영적 감각은 하나부터 열까지

그 마음 중심의 회개와 행실에 달려있습니다

 

대개 지식은, 가르치는 자들=설교하는 자들과

가르침을 받는 자의 에고로-왜곡되기 쉽습니다.

성경 역시, 예수님의 원래 가르침에서

많은 부분이, 각색 & 윤색되고 변질되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지식은 주로 에고를 강화하는데 사용됩니다.

누구보다 열심히 종교생활을 하고

누구 못지않게 성경지식을 많이 알고 있지만

오히려 앞 뒤 꽉막힌 외골수나 고집쟁이,

극강의 뺀질이가 되어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영성은 전혀 없고, 에고만 극강인 교주들,

종교 지도자들, 종교인들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영성과 사랑이 충만한 예수 제자가 아닌 

종교성과 아집이 충만한 바리새인의 후예인들은

바리새인이 옷술에 경문 띠를 달아붙이듯...

자기 머리 속에 성경지식을 더 많이

입력하는 데 열심을 부립니다.

그래야만 자기 편의대로, 성경  어떤 부분은

코에 걸어서 코걸이로 해석하고, 또  

어떤 부분은 귀에 걸어 귀걸이로, 이용하면서 

효과적으로 신도나 타인을 요리할 수 있으니까요.

뿐 아니라 하나님의 대리인인냥 위세를 떨고

완장 하나(목사나 직분)차고서 상좌에 앉아 

큰 소리치고 훈계하고 협박할 수 있으니까요.

 

그들우 자신은 조금도 변하지 않고서~

한 발걸음도 움직이지 않은 채로~

남을 움직이게 하고 하나님을 움직이게

하려고 안간힘을 쓰게 됩니다.

 

우리 곁에 있는 수호령. 지도령은

투명 유리 속을 들여다보듯 항상

우리 마음 속을 훤히 들여다보고 있으며

종교생활에 열심인 이유나

그렇게 설교하는 설교자의 숨은 의도 등,

그 마음 중심과 생각의 깊은 동기와 의도를

손바닥 보듯 훤히 들여다 보고 있습니다.

 

에고의 충동과 욕망으로 행하는 것인지

순전한 양심으로 정직하게 행하는 것인지

명료하게 다 관찰하고 있습니다. 사람

자신만, 이런 사실을 알지도 믿지도 못하고

사람을 속이듯이 그렇게 모든 것을 다 속이고

숨길 수 있다고 여깁니다. 그래서 대부분

모래에 머리를 쳐박은 타조들처럼 살고 있습니다.

아무도 모르게, 자기 에고의 허영과 욕심이

하나님의 뜻인냥, 진리인냥, 하나님을 위해서 하는

충성인냥, 상급인냥 합리화될 줄로 착각합니다.

 

그러나 하늘도 신도 자신의 수호령조차

눈꼽만큼도 속일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항상 명심해야 합니다.

 

위선이 넘쳐날 때는 대표기도 할 때입니다.

하나님을 가르치고 훈계하는 것인지...

설교를 하는 것인지...

나는 기도를 이렇게 유창하고 은혜스럽게

잘 한다오. 잘 들어들 보슈... 하는 것인지?

도무지 그 의도를 알수없는 기도를 합니다.

영적인 차원에서 보면 그것은

기도가 아니라 쓰레기며,  언어공해이자

따발총 쏘듯 던지는 오물투척 행위입니다.

이런  기도가  바리새인들의 기도입니다.

■ 이런 기도는 당연히 응답되지 않습니다.

그들 역시 응답되지 않는 기도들이 쌓이자

기도는 그냥 "형식적으로 하는 것"이라

 생각하게 됩니다 그도 그럴것이 

늘 자기보존 욕구가 충만한 에고에 기반한

육적인 욕심으로 구하는 기도여서

기도가 응답되지 않고 응답된다해도 

영적 성장에 아무런 유익도 없는

부질없는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마음 중심이 담긴 진실한 기도가 아닌,

삯꾼들이 자신의 종교적 성공과 욕심을 이루고자  

미끼 투척용으로 던지는 기도제목들은

덥썩 물면 안됩니다. 영적으로 냉철하게

분별한 뒤, 거부하는 것이 영혼에 더 유익합니다.

와글 와글 떠드는 개구리영의 주절댐이니까요.

영혼없는 기도, 아무말이나 듣기에 좋은, 

은혜스런? 소리로 늘어놓으며 막 주절대는...

서글프고 허망한 기도자로 훈련되다 보면  

말만 청산유수요  말은 비단결인데, 뒤로 하는

행동은 이중적이고 개똥차반이 되기 쉽습니다.

 

기도라는 고귀한 실재계와의 소통의 통로조차

육신적 욕망을 위해, 에고의 즐거움을 충족하고

자기를 드러내고 꾸미고 치장하는데 이용됩니다.

겉다르고 속다른  종교생활,

보여주기식 찬양과 기도, 설교,

서로의 칭찬을 받기 위한, 사람의 영광을 위한

헛된 것들에 그들 마음이 온통 미혹되어 있습니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는

삶을 살려고 몸부림치고 발버둥치면서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반성하면서 숙고한다면

하늘의 수호령이 왜 지켜주시지 않겠으며

한숨 쉬듯 내뱉는 말 한마디 조차도

왜 친철하게 응답해 주시지 않겠습니까?

때를 따라 은혜와 영감을 부어주지 않겠습니까?

 

성령께서 우리를 인도하시는 것은

마치 사랑이 넘치는 실재계 도인으로부터

1대1 개인 과외 교습을  받는듯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한걸음씩 한걸음씩 깨우쳐가면서 

영계와 하늘에 대한 체험과 깨달음과 믿음이

아무도 모르게 자라가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사람의 중심과 행위가 성령이나 인도령=>

지도령에게 인정을 받게 되면, 딱 그만큼 

영적인 진보가 일어나고 깨우침이 옵니다

하나를 인정받으면 하나의 비밀을 체험하게 되고

열을 인정받으면 열을 체험하고 깨달을 수 있는데

이런 영계와의 상호교류 속에서 기적과 함께

영적인 일이 생기고 영적 진보가 일어납니다.

 

하늘로부터 인정을 받음으로써 

갖게 되는 수호령과의 상호교류는 일단

큰 사랑과 평화, 평안이 특징입니다. 또,

사랑과 공의가(거룩함) 두드러진 특징입니다.

 

그러나 종교적. 편견. 특권의식. 편협한 사고,

위협. 위력, 두려움. 불안. 초조, 인정받기 경쟁.

아부, 차별. 계급. 감투, 특권의식은 모두

지옥 악령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지옥악령들은 과시욕이 쩔고 또 교만합니다.

이런 자들만 멀리해도 인생 절반은 성공합니다.

 

지옥의 악마들, 어둠의 영들은 앞다투어

하나님을 팔고 예수를 팔면서 종교장사를

하나 그 중심은 교만과 지옥의식으로 가득합니다

아부  많이 하는 순서대로~ 헌금 많이 바치는

순서대로 감투를 씌워주고 완장을 채워주면서

어리고 무지한 교인들을 속이고 이용해 먹는데에

아빨까기와 조직의 모든 역량을 총동원하게 됩니다.

 

참된 신앙 생활은

종교생활을 열심히 하느냐? 가 아닙니다.

삯꾼 중심, 조직중심의, 종교생활을 

얼마나 충실히 하느냐? 는 더 더욱 아닙니다.

삯꾼 장사터에 얼마나 많이 헌금하느냐?도

아니며, (그것은 다만 사기당하는 것일뿐) 

심지어

무엇을 믿느냐?도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오직 중요한 것은 

성령과 양심을 따라 사느냐 아니냐...하는

■ 어떻게 사느냐? 하는 것입니다.

 

ㅡ예수 그리스도의 향기ㅡ

 

"신에게 의존하기 보다

신의 뜻을 실천하라"

https://youtu.be/zNKzKfIiCFk?si=In6A0t2dbHVH_hx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