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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 기독교인은 구원받을까?

에덴촌 2023. 11. 12. 20:12

믿음의 본질이 무엇일까요?

기독교에서는 예수를 믿는 것, 

예수가 구원임을 믿는 것과

삼위일체의 하나님을 믿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종교로부터 배워서 

머리에 입력된 하나의 지식이자 편견입니다.

 

그런데 만약 사고로 뇌손상을 입어,

그 종교인의 두뇌에 입력한 이 이론과

이 지식이 지워졌다면 그때는 어떻게 될까요?

"예수가 구원해 줄 것이다. 예수를 믿으라"

고 다시 세뇌하고 입력시켜야 구원받을까요?

그러자  뇌손상을 입은 그 종교인은 

"예수가 무엇인지를 되물으면서

구원이 맛있는 거냐?"고 하면서

맛있는 거라면 빨리 달라고 하고 있다면...

그 종교인의 구원은 어떻게 될까요?

 

한 유명-목사에게 치매가 와서

예수가 누구인지를 알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실제로 이런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 목사는 실제로 "예수가 누구냐?"

고 반문해서 문안하러 온 교회 중직자들이

눈이 휘둥그래져서 수군거렸다고 합니다.

 

이 두 사람의 구원은 어떻게 되는 걸까요?

예수 천당도 불신 지옥도 모르고, 예수가 누군지

알지도 믿지도 못하기에 구원 받지 못하는 걸까요?

여기서 우리가 분명하게 알아야 할 것은

구원은, 지식이나 기억에 있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너무나 오랫동안 속아왔습니다. 구원은

누굴 믿는 믿음이나,  지식이나 두뇌에 있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육적인 시각으로 판단해서는 안됩니다.

 

구원은 오직 그의 의식과 행위에 있고

생활로 기록되는 생활기록부의 주체인

각 사람의 의식혼에 달린 것입니다.

많은 기독교인들이 큰 착각을 하고 있는데

의식혼은 두뇌도 기억도 어떤 믿음도 아닙니다.

 

한순간에 사라질 수 있는, 기억이나 지식,믿음속에

구원이 있는 것이 아니고 더구나 교리나 지식이나

성구나 그것을 믿는 것에 구원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리고 종교적 성공, 물질, 돈, 명예, 명성. 직분은 

정말이지 구원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습니다.

 

"예수 믿는다와,  요런 식으로 믿는다." 

하는 단편적이고, 의미없는 것에만 몰입하어 

"예수 안믿는다. 요런 식이 아닌 다른 식으로 믿는다"

하는  다른 모든 종교들과 모든 이론들을 항상

분리하고 정죄하는 데만 힘쓰는 종교인들이

바로 바리새인들입니다, 하나님을 위한다는 그들의

사역은,  항상 신을 대적하는 일이 되어 있습니다.

 

■도대체 왜? 

■누굴 위해서? 그런 짓에 골몰할까요?

이는 오직  바리새인 자신과, 삯꾼의 권력집중과

삯꾼의 뱃속 채우기와 그들의 유익을 위한 것일 뿐,

하나님도, 성경도 예수도, 신도들도

모조리 그들에게는 위세용, 과시용. 치장용이며

약탈대상이 되어, 유린당하고 이용당할 뿐입니다

오직 삯꾼교의 부흥과 그들 종교 권력의 집중을 위해

그들이 말하는 기독교ㅡ 그러나 실상은 예수교가  아닌

목사교, 교리교, 믿음교, 천국간다교, 복받는다교,

구원받는티켓교가 존재하고 있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성경은 신과 우주와 타인과 조화를 이루는 삶에

관한 , ■바른 생활의 지침서같은 것이지만...

모든 인간은 오직 바른 마음, 바른 생각, 선한 행실,

올바른 행실로 구원받고 천국에 입성할 것이지만...

바리새인과 삯꾼 강도들은  바른 생활의 지침서를

온통 자기 유익과 욕망을 위한 배타적인 교리교,

싸구려 믿음교, 종교를 위한 종교교로 변개시켰습니다. 

그것도 "하나님 나라와 그 의를 위한다"는 표어와

명목으로 말입니다. 명목이라는 포장지를 뜯어보면

속 알맹이는 온통, 삯꾼 늑대들을 위한 복음입니다.

 

가난한 자들과 공평하게 나누라는 

십일조 정신과 본래의 취지는

온통 삯꾼의 뱃속만을 채우고 삭꾼 바리새인들의, 

종교적 욕심과 야망을 키우는 용도로 변질되어

있습니다. 이러니 식꾼이요. 강도요. 도둑이요.

하나님의 이름으로, 성구로, 신도들을 협박하고

삥뜯는 조폭, 건달들일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들이 예수님 앞에서도 지금처럼 똑같이

십일조 헌금을  자기종교 사업터에 갖다 바치면 

하늘의 복을 받는다고 설교할 수 있을까요?

지금 한국 기독교회는

삥뜯기의 거장이 가장 성공한 목사가 되어 있고

삯꾼계의 가장 존경스런 목사가 되어 있습니다.

 

구원이 누구에게나 공평한 법으로 작동되려면, 

예수 믿음 티켓 하나만으로 구원받는다는 

영적인 대사기극이 종말을 고해야 합니다.

누구에게나 각자의 선한 양심과 선한 생활로,

각자의 바른 행위로, 공평하게 저울로 달이져

한치의 오차없이 계수될 수 있을 때 그때 비로소

"하늘은 역시 누구에게나 공평하시다."

"창조주는 역시 공평하시다. 치우침이 없다."

어둠의 세계, 악령들의 조폭세계에서나 

통하는 그런 "특혜나 특권이란 없다."  

"그래야  대 우주의 원리이자 참하니님이지"

라는 양심의 소리가 저절로 튀어나올 것입니다

 

3인칭,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볼 수 없다면

우리는 종교에 푹 빠져서 무의식상태로 

삯꾼 교주에게 무조건적인 아멘으로 반응을 하는

앵무새 맹신도로 계속 사육당하면서 살게 됩니다.

이는 깨어있는 삶과는 정 반대의 삶이며 나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가스라이팅 당하는 종교좀비가 됩니다.

 

이 맹신자들은 자기 환경도 컨트롤 할 수 없으며,

자기 자신조차 조금도 컨트롤 할 수가 없습니다.

성령께서 주시는 평안과 성령의 열매보다는 

항상 비위맞추기와 불안, 두려움에 시달리게 됩니다.

자신을 이용하는 포식자에게 휘둘리면서도 

상황을 전혀 인지하지 못한 채, 습관적인 종교생활과

군중 분위기에 휩쓸려  눈치보기 경쟁. 

아부하기 경쟁, 많이 바치기로 경쟁할 수 밖에 

없게 되는데 바로 그런 의식이  지옥의 의식입니다.

나보다 더  강해 보이는 놈에게 머리채를  붙잡힌 채,

휘둘리면서 복종, 순종하는 신앙생활이 되어

세뇌되고 바치고를 반복하며, 이용당하고 끌려다니는

저급한 종교생활로 그 가련한 삶을 마감하게 됩니다.  

 

믿음에 대해 제3자의 시점, 메타인지로 

볼 수 있다면, 믿음의 본질, 그 덧없고 가벼움에

놀라움과 실소를 금하지 못할 것입니다.

 

"요건 요렇게 믿어. 저건 저렇게 믿어야 구원받아.

다르게 믿거나 안믿으면 지옥간다"는 말에 대해

의식이 깨어난 사람이라면 

이런 강요에 대해 자문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어쩔건데?!"

"고작 그게 전부야?"

"그러면 그 결과는 어떻게 증명할건데?

 

용기있게 스스로에게 자문을 할 수 있을 때, 

아멘부대=앵무새의식 수준을 벗어나게 될 것입니다.

그제서야 비로소 종교노예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배나 지옥자식이 되기 쉬운 비리새인의 믿음,

맹목적인 믿음은,  영혼의 차원상승에도, 

혼의 의식 확장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ㅡ예수 그리스도의 향기ㅡ

 

"경험한 자들만 알 수 있는

무서운 지박령 이야기/실화"

https://youtu.be/B9G_LGmEES0?si=oFiXm87q5Dm6TGB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