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인정해주는 사람으로 살기
하나님이 인정해주는 사람으로 살기
글쓴이/봉민근
사람들 앞에 나아가서 폼 잡고 우쭐댔다고 치자. 나에게 남는 것이 무엇일까?
그것을 본 사람들의 반응이 어떨까?
앞에서는 말하지 않지만 각자의 마음속에는 그에 대한 나름대로의 해석이 있을 수 있다.
하나님 앞에서 인간은 아무것도 자랑할 것이 없는 존재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나는 아무것도 아님을 아는 자가 진정 자신을 아는 자요 믿음의 사람이며 은혜받은 자다.
사도 바울처럼 자신의 연약함을 자랑할 수 있는 것이 오히려 하나님 앞에서 정직한 표현이다.
인간은 강한 듯하여도 한없이 나약하고 무능하기가 짝이 없다.
그때그때 매 순간 하나님이 힘주시고 능력을 주시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이 인간의 한계이다.
살아있는 인간만이 창조주의 말씀에 따라 순종하는 것이 아니다.
바다의 물도 잠잠하라 하면 순종하고 돌들도 바다에 던져지라 하면 순응한다.
우주만물 그 무엇 하나 주님의 말씀 앞에 불순종하는 것은 없다.
오직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인간만이 불순종하고 거역하며 늘 배도를 일삼는다.
사람들 보고 나무처럼 한 곳에서 평생을 살라고 한다면 불평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닐 것이다.
산천에 초목도 흐르는 시냇물도 하나님의 섭리에 따라 순응하건만 인간만이 이렇듯 타락한 채
불평하고 근심하며 어리석게도 하나님의 영광을 욕되게 하며 살고 있다.
새들도 매일 같이 노래하며 하나님을 예배하는데 겨우 한 주간에 한 시간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에도
인색하며 부담을 갖고 살면서 믿음 좋은 사람처럼 위장하고 사는 것이 우리들이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나 같은 어리석고 불순종 덩어리인 이 죄인을 사랑한다 하신다.
내가 너를 위하여 목숨을 버려 피의 값으로 너를 샀노라! 너는 내 것이라 말씀하신다.
은혜를 모르는 철면피가 바로 죄가 가득한 나 자신이다.
우쭐대며 자랑하고 살아도 하나님이 인정해 주지 않으면 그 모든 것은 쓰레기 같은 것이요 무용지물이다.
사람에게 보이려 하지 말고 하나님이 인정해주는 사람으로 살아야 한다.
지금 나의 모습을 보고 하나님은 무엇이라 평가 하실까를 생각하며 인생을 삼가 조심하며 살아야 할 것이다.
☆자료/ⓒ창골산 봉서방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사람의 말을 듣는 것이 아니라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합니다.
사람의 말과 성경 말씀에 충돌이 발생하게 되면
가차 없이 하나님의 말씀에 아멘 합니다.
인간신이 뭐라고 떠드나 입만 쳐다보고 있다가
말이 떨어지자마자 아멘 할 준비하는 자가 아니라
잘 듣고 깊게 생각하고 그 말이 성경에 비춰봐서
옳다고 생각될 때 아멘 합니다
우리의 세밀한 삶의 영역까지 돌보시고 이끌어주시는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사랑을 늘 기억하면서
나의 삶 속에서 조금의 부정함과 우상숭배의 모양이라도 있다면
늘 자신을 돌아보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힘입어
정결케 되고 믿음 가운데 담대히 날마다 주님께
나아가는 우리가 모두 되기를 바랍니다
나는 인색한 사람입니다.
나는 인색한 사람입니다.
사람들에게 인색하고 하나님 앞에서도 인색 합니다.
물질에 약하고 명예에 목 말라하며 권세를 탐하는 욕심쟁이 입니다.
나는 하나님께 드리기에 인색한 사람입니다.
시간을 드리기에 약하며 예배드리기에 인색합니다.
전도하기에 마음 뿐 행함에 인색하며 복 받기에는 한없이 즐거워하여도 하나님께 기도드리기에 게으르며 인색합니다.
사랑받기 좋아하나 사랑하기에 인색한 사람입니다.
남에게 받기는 좋아하나 주기에는 인색하고 내 고집대로 살아가는 나는 인색한 스크루지 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그리스도인에게 갈보리산 십자가는 저 멀리 있는것이 아니다.
갈보리산 십자가의 예수님을 만나러 중동지역 이스라엘 땅에까지 갈 필요도 없다
내가 지은 죄를 주님께 의탁하고 무릎 꿇는 곳이 갈보리산 십자가다.
골고다 해골길에는 용서가 있다.
사랑만이 존재하는 고난의 현장이다.
고난없이 어찌 사랑을 쟁취 하겠는가?
고난과 수고 없는 사랑은 거짓이다.
용서가 있는 곳이 골고다 십자가다.
사랑의 수고가 있는 곳이 갈보리 십자가다.
눈물로 가는 좁은 길이 십자가다.
지기 싫어도 지는 것이 자기 십자가다.
십자가는 대신 지고 가는 행진이다.
카타콤의 순교자 중에서
우리는 보석을 싫어하는 자들이 아니다.
다만 영원한 보석을 원하는 자들이다.
우리는 재물을 싫어하는 자들이 아니다.
다만 썩지 않는 재물을 원하는 자들이다.
우리는 명예를 싫어하는 자들이 아니다.
다만 예수님과 함께 할 수 있는 최고의 명예를 원하는 자들이다.
우리는 즐거움을 싫어하는 자들이 아니다.
다만 영생의 즐거움을 원하는 자들이다.
우리는 술을 싫어하는 자들이 아니다.
다만 천국에서 마실 포도주를 원하는 자들이다.
우리는 바보가 아니다.
다만 거룩한 신부가 되기 위해 잠시
바보처럼 보이는 길을 선택한 자들이다
저주의 3가지
기독교 신학자 우찌무라 간조의 <일본 內村鑑三 1861.3.26 - 1930.3.28.> 글 가운데 이런 말이 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저주가 있다면
그것은 질병도, 실패도, 배신 당하는 것도 아니다.
만일에 저주가 있다면 세 가지이다.
첫째,
하나님이 믿어지지 않는 것이다.
아무리 믿어보려 해도 믿어지지 않는, 버림받은 심령이다.
둘째,
성경을 읽어도, 요절을 외워도,
성경은 많이 안다고 하는데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지 않는 것이다
성경은 이 세상에 지식적인 책이 아니다.
성경을 읽는 중에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와야 된다.
설교 말씀을 듣는 중에 성령님의 세미한 음성이 들려와야 한다.
이것이 안 들리는 사람이 저주받은 사람이다.
셋째,
감사하는 마음이 없는 사람이다.
감사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고 원망과 불평 뿐이다.
사도 바울은 로마 감옥에서도
빌립보 성도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감사하고
기도할 때마다 기쁨으로 간구하노라.” -빌립보서 1:4
생각할 때마다 원망하고 분하고
한이 맺히는 사람은 저주받은 사람이다.
감사는 은혜에 대한 마땅한 응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