뱁새가 황새 따라 가려다
용서는 내가 원하는 모든것을 준다.
용서는 마음들이
결합되어 있음을 깨닫게 한다.
용서는 모든 고통과 상실을 끝낸다.
용서하지 않으려는 자는
비판하기 마련이다.
자신이 용서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정당화해야 하기 때문이다.
용서를 실천하는것에
무의식적 저항은 만만치 않다.
인생에서 자신이 모든 것을
완벽하게 해야하고
아무 실수도 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해라
그렇게 되지는 않을것이다.
자신이 잘못을 용서하듯
남의 잘못도 용서하라.
무엇이든 용서할수 있을 정도로
용서를 갈고 닦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다.
업보는 용서하기 전까지만 존재한다.
용서로 죄책감을 치워버리면
그 업보는 치유된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지금
투사하고 있는지 모른다.
아무것도 두려워할것이 없다는
분명한 앎을 간직한 채 행동하라.
나는 몸이 아니다.
나는 자유롭다.
미래에 대해 걱정하지 마라.
용서는 허상이 무상임을 보며
허상이 꾸며대는 것들을 바로 꿰뚫어 본다.
거짓을 보아도 속지 않는다.
-그대는 불멸의 존재다-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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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무서운 이야기
나쁜놈 VS 미친놈" ㅡ실화입니다.
허영심에 빠진 사람,
분수에 맞지 않는 소비를 한, 청년이
어떻게 망해가고 악마가 되어가는지
그 과정을 적나라하게 볼 수 있습니다.
허영심은 나락,죽음과 쉽게 연결됩니다.
교만이 패망의 선봉이듯
허영심 역시 패망의 선봉입니다.
영적 허영심에 빠진 자들도 많습니다.
고작 악귀에게 시달리는 영적 수준이면서
스스로 한국 교회를 대표하고
한국교회을 이끌어 나간다고 믿는
영적 허영과 교만에 찌든 목사도 있습니다.
영육간 양아치에게 악귀가 들러붙는 것은
똥에 파리가 꼬이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분수에 맞지 않는 값비싼 외제차나
명품이나, 보여주기식 겉치레 소비는
어리석은 자들의 수치입니다.
뱁새가 황새 따라가려다
가랑이가 찢어집니다.
진짜 부자는 자기 부요를 숨기려 하지만
가짜는 "부자로 보이기와 과시하기"에
혈안이 되어 가랑이가 찢어지고 맙니다.
진짜 영성가는 자기 영성을 숨기려 하지만
가짜는 틈만나면 자기를 드러내고, 높이고
과시하다가 결국 가랑이가 찢어지고 맙니다.
결국 멸망하고 패망하게 됩니다.
목사나 동료들에게 인정받기 위해서
허영끼 넘치는 과도한 헌금과
무대뽀식 충성을 하다가 멸망을
자초하는 신도들도 있습니다.
심지어 연예인들의 부모 중에도
부모 스스로는 아무 능력도 없으면서
연예인이자 스타인 자녀 이름으로
여기 저기에서 돈을 막 빌려쓰고는
자녀에게 일방적으로 자기 빚을
떠넘기는 쓰레기같은 인성을 가진,
악하고 패역한 부모들이 더러 있습니다.
수입에 맞지 않는 과도한 소비를 하다가
그 빚을 스스로 책임지지 못하고
가족이나 주변인들에게 큰 피해를 주거나
극단적 선택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에게는 허영심이 큰 죄요, 업보입니다
우리는 무엇보다
돈 쓰는 것에 겸손하고
소비에 겸손해야 합니다.
가진 것이 적든 많든
자신이 자신이 가진 것에 만족하고
감사하는 자세가
진정한 겸손이고 참된 영성입니다.
ㅡ예수 그리스도의 향기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