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한성부(漢城府) 들여다 보기 - (1) 주민센터 규모의 조선시대 한성부
조선시대 한성부(漢城府) 들여다 보기
(1) 주민센터 규모의 조선시대 한성부
한성부는 조선시대의 서울 명칭이다. 2021년말 현재 950만 시민이 살고 있는 서울특별시는 시청과 구청, 주민센터가 행정을 맡고 있다. 또한 시민의 안녕과 질서를 위해 경찰청과 소방본부가 설치되어 있다. 그렇다면 이렇게 많은 시민의 뒷바라지를 위해 봉사하는 공무원은 얼마나 될까?
2021년 3월 말의 서울시 통계를 보면, 일반직, 별정직, 정무직 등 모두 4만 5,316명이 근무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런데 조선시대 한성부의 정규직원은 가장 많을 때가 융희 3년(1909)에 31명이었고, 가장 적은 때는 고종 24년(1887)으로 6명이 근무한 적도 있다. 조선 말기에는 한성부의 임시직원이 126명이 배치되어 있어서 150여명의 직원이 20만명의 서울 시민의 살림을 맡은 셈이다.
태조 이성계는 한양으로 천도한 이듬해인 1395년에 한양부를 한성부로 개칭했다. 이어서 그 이듬해 1396년 4월에 서울의 행정구역을 정했다. 당시 한성부의 행정구역은 도성 안은 물론 도성 밖 10리 내외, 즉 ‘성저10리(城底十里)’까지로 오늘날 서울시의 강북지역이 해당된다.
서울시는 현재 25개 구청과 425개의 주민센터가 설치되어 시민들의 행정을 맡고 있지만, 조선 건국초에는 한성부의 행정구역은 5부(部) 52방(坊)으로 나뉘어 있었다.
5부는 동·서·남·북·중부로서 오늘날의 구(區)와 유사한데, 부(部)의 책임자는 종6품의 영(令)으로서 그 밑에 녹사(錄事) 2명씩을 배치했다.
서울의 52방(坊) 이름은 조선초의 개국공신 정도전이 유교의 경전 내용에서 따서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즉 적선방, 가회방, 안국방, 서린방, 태평방, 용산방 등은 오늘날까지 동명으로 남아 있다.
조선 중기 이후 한성부의 행정체제는 부(部)→방(坊)→계(契)․동(洞)→통(統)으로 조직되고, ?경국대전?에 보면 5호(戶)를 1통(統)으로 하여 통주(統主)를 두게 되어 있었다.(*)